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행복한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6.07.18 11:4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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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26>

저출산에 대응하는 일본의 이쿠맨 운동이 뜨겁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이란 뜻으로, 육아의 일본어 발음 이쿠지(育児)와 멋진 남자를 뜻하는 이케멘(イケメン)을 합친 말이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2010년 ‘이쿠맨 프로젝트’를 시행해 남성들의 이쿠멘 확산을 독려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베이이부머인 단카이(だんかい, 團塊)세대는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할아버지인 ‘이쿠지이(育じい)’도 늘어나고 있다.

한편 도요타는 지난 6월 여성이 육아·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과 이직을 막기 위해 1/3의 직원이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재택근무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본은 이렇듯 저출산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다.

 나도 육아휴직을 내 봤다. 그 당시 남성의 육아휴직으로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육아휴직은 우울증이 심했던 동료였다. 내가 자녀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낸다고 하자 조직이 발칵 뒤집혔다. 나에 대한 근거 없는 각종 소문(정신병, 이혼, 외계인)이 난무했고, 상사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정상적인 육아휴직’임을 한달 내내 설명해야 했다.

 육아휴직. 아이는 30분마다 잠을 깼다. 아이는 업어야만 잠을 잤다. 아이를 업어서 재우고, 나는 업은 채로 졸았다. 가뜩이나 안 좋은 허리는 악화되어 버티고 버티다 몇 년 후에 디스크 수술도 했다. 매일 매일의 목욕, 삼시세끼에 쌓이는 설거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산책.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집에서 육아를 하면 흔히 남편들은 ‘집에서 애만 보면서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고 바쁘다고 하느냐?’고 한다. 나는 당당히 그들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겠다.

 각설하고, 아이가 태어난 지 10년째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직장을 다니다 말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커가는 모습은 모두 지켜보았다. 뒤집기, 걷기, ‘아빠’라는 웅얼거림을 듣기. 어린이집 입학, 졸업. 초등학교 입학. 아이의 키를 잴 때 마다 높아지는 눈금들. 그간 많이 웃고, 그만큼 속상했다. 아빠가 처음인지라 ‘내가 아빠 노릇을 잘 하는 건가?’하는 고민들, ‘지금의 육아방법이 옳은 것일까?’하는 대답 없는 메아리와 같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들.
 그런데 아이와 함께한 10년을 뒤돌아보고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면 아이만 자라는지 알았는데, 나도 자랄 줄은 몰랐다.

 깨달음의 첫번째는 행복의 원칙은 사소함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소함에 행복이 있었고, 사소함 안에 나와 아이를 함께 키우는 영양제가 숨겨져 있었다.

 친한 형님이 대화 중 말한다.

 “서양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젠가 물어보면,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를 꼽는다고 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돈이 많을 때나 가족과 함께할 때가 아니라 ‘여행을 떠났을 때’를 꼽는다고 해. 이거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

 나는 적극 동의하며 말했다.

 “승진이나 로또에 당첨되면 그 순간 내지 하루, 일주일이 행복할 겁니다. 대단히 오래 행복할 것 같지만 말이죠.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파격은 행복하지만, 여행은 짧죠. 평생에 몇 번만 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년에 며칠 행복한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족은 항상 함께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행복한 방법을 서양사람은 알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서양의 좋은 점, 나쁜 점이 있지만 좋은 점은 의식적, 의도적으로 배워야하지 않을까요?”

 사소함이다. 행복의 원칙은 사소함이다.
 1년을 희생해 1주일의 휴가를 보내는 건 1주일의 행복을 제공한다.
 5년을 희생해 1단계의 승진을 얻는 것은 1달의 행복을 제공한다.
 반면, 사소한 일상에 행복하면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을 열고 신문을 꺼낸다. 면도를 하며, 대강대강 읽는다. 수십명의 취재원, 기자들이 밤을 새며 쓴 기사를 나는 훑어보며 하루를 배움으로 시작한다는 것에 행복하다.
 아이가 아침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직까지 가리는 음식이 꽤나 많지만 열심히 먹는 모습에 절로 배부르다. 아기 때처럼 귀엽진 않지만 멋있다. 행복한 일상에 행복하다. 아침이 행복하니 저녁까지 행복포만감이 충만하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예전에 쓴 연애편지를 뒹굴 대며 본다. 과거로 돌아가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예쁘게 쓰려고 꾹꾹 눌러쓴 한 장 한 장의 편지를 보며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 행복한 기분이 든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 숙면을 준비하며 책을 읽는다. 저자가 수개월, 수년간 머리 싸매며 쓴 글이지만 나에게는 몇 시간 주어지면 그만이다. 지식을 훔치는 것과 같은 쾌감에 행복하다.
 
 이렇듯 제일가는 행복의 원칙은 사소함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기뻐하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집안에, 혹은 내 안에 있다.

 깨달음의 두번째는 행복의 완성을 위해서는 아이를 키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끝별 시인의 말을 대신 빌려본다.

 ‘세상을 알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불화했다. 밥벌이를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했다. 밥벌이에 좌절하면서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야 아버지와 화해했다.’

 굳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아들이 아버지와 경쟁하고, 이성인 어머니와 친한 것)를 꺼낼 필요도 없다. 세상 대부분의 아들은 철이 들기 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철이 들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마지막으로 자식을 낳고 키우면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화해한다. 보통 40여년이 걸리는 쓸데없는 ‘먼 길 돌아가기’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알면 좋지만, 이렇게 ‘아들’은 먼 길을 돌고 돌아 진정한 ‘남자’가 된다.
 소설가, 수필가들의 데뷔작 대부분이 남자의 경우 어릴 적 사사건건 충돌하던 아버지를 소재로, 여자들이 어릴 적 그렇게 싸우던 어머니를 소재로 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로 당연한 일일 터이다.

 두 번째 깨달음.
 행복의 완성을 위해서는 아이를 키워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오래 쳐다보아야 한다.
 오물거리는 입. 미묘한 표정의 변화. 고사리 같던 손가락에서 굵어진 손가락. 커져가는 신발에 맞는 커져가는 발.

 수 십 권의 행복에 관한 책들. 행복도 배워야 하는 시대인가?
 나는 이렇게 간단히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의 원칙을 세우고 완성까지 꿈꾸고 있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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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팬 2016-07-19 16:32:48
대단하십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홍기확 2016-07-19 16:08:12
감사합니다.
신문 한 구석에 저만의 공간을 갖고,
들락날락 할 수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지요.
글쓰기가 밀린 숙제를 하거나 억지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편적이고
습관처럼 편합니다.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팬'까지나~^^

2016-07-19 13:32:46
평범한 아빠가 전해주는 특별한 감동이야기에 오늘도 감동하나 얻어갑니다

무하기 2016-07-19 09:13:28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