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너도 하늘말나리야》 1
《너도 하늘말나리야》 1
  • 조형민
  • 승인 2023.11.08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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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산책] 4
세상과 화해하는 능동적 존재들, 《너도 하늘말나리야》 1
- 가족과 또래 집단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목차>
1. 들어가며 
2. 가족의 상실: 부조화 속 갈등과 화해 
2.1. 잃어버린 나의 자리―미르 
2.2. 건강한 슬픔―소희
2.3. 기다림의 상처―바우 

3. 또래 집단의 공유성: 교차구성에 의한 인물들의 심리적 결속 
3.1. 느티나무가 되어―미르  
3.2. 하늘말나리의 소원―소희
3.3. 문제아에서 꿈꾸는 아이로―바우 
4. 하늘말나리의 꿈 

아동·청소년기는 생애 발달 단계에서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내적 요구의 충돌로 심리적 갈등을 겪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행복감과 만족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삶의 만족도는 행복한 삶을 의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잘 기능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삶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요인은 가족건강성과 또래 집단의 상호작용성이다. 가족건강성은 가족 구성원 간에 고유한 가치를 공유하고, 친밀한 유대감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함께 극복해가는 긍정적인 가족을 의미한다. 또래 집단은 새로운 역할 수행에 대한 부담감과 심리적 독립 욕구를 공유하며 상호작용한다. 가족과 또래 집단을 통해 함양된 공동체 의식은 아이들이 개인을 초월해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핵심 가치가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가족과 또래 집단은 아동·청소년 문학의 핵심 제재로 등장하며 다양한 경험의 순간을 제시한다. 가보지 못한 세계와 미래에 마주할 순간들 속에서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의 속살 같은 정서와 감정에 공감하고 다독이며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을 그려낸다. 과거 교훈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주체자인 아이들의 개성과 심리적 성장 과정을 보다 진솔하게 접근해 나가는 것이 오늘날 아동·청소년 문학의 소구점이라 하겠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가족의 상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내하며 서로를 보듬는 달밭마을 열세 살 소년·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외적 현실과 내적 인식의 충돌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아이들은 서로 심리적 동질감을 느끼며 유대한다. 기대와 원망, 부정과 수용이라는 감정의 굴곡은 아이들 각자의 것으로 살아있고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고립감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다시 공동체에 안착하는 내적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소년기 즈음에 있는 독자들은 아이들의 내면과 세상의 부조화를 보며 인물들의 편에 서서 그 아픔을 함께 할 것이다. 이에, 가족과 또래 집단이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과 성장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작품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2. 가족의 상실: 부조화 속 갈등과 화해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단둘이 살게 된 미르, 아프신 할머니와 살아가는 소희, 엄마를 병으로 잃고 아빠와 사는 바우가 이야기의 중심인물들이다. 세 아이는 저마다 가족 구성원의 부재로 인해 내적 불안을 끌어안고 주변 세계와 진통을 겪고 있다. 

학령기 아이들에게 가족은 삶의 모체가 되고 자아정체성과 자아존중감 형성에 본질적 토대가 된다. 가족 기능은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며 독립된 인격체로 자라나가기 위한 정신적 기반을 제공한다. 가족의 정서적 건강은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를 통제하고 극복할 수 있는 회복력을 좌우하게 된다. 만약 가족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심리적 불안과 자존감 상실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 

오늘날 한부모 가정과 조부모 가정의 증가는 아동·청소년들의 정체성 형성에 중대한 변화요인이다. 마땅히 자신과 함께해야 할 부모님의 부재는 아이들이 겪어야 할 시련 중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과제가 된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그 안에서 아이들이 겪는 결핍을 형상화하고 있다. 철석같이 믿었던 아빠의 재혼으로 존재감을 부정당한 미르. 기억조차 없는 부모님에, 할머니까지 떠나보내야 하는 소희.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세상과 단절한 바우는 모두 오늘날 우리 시대의 아이들이다. 이 시대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슬픔의 결을 품고 각자의 방식대로 치유해 나가는 모습이 아동·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2.1. 잃어버린 나의 자리―미르 

덜 자란 아이. 뾰족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엉겅퀴 같은 아이. 소희와 바우가 미르를 보고 떠올린 인상이다. 사춘기 아이 미르는 자기주장과 정체성이 강한 인물이다. 미르는 부모님의 이혼에서 자신에게 어떤 결정권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 가족구성원으로 자신이 배제되었다는 상실감과 부모님의 선택으로 모든 불행을 감수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매우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런 미르에게 일방적인 이혼 통보와 시골 마을로의 이사 결정은 그간 자신이 믿어온 세계의 배신으로 다가온다. 자존심 강한 미르는 부정당한 자신의 존재를 솔직하게 토로하고 위로받을 곳조차 없이 외로움 속에서 헤매는 아이다.

달밭마을 진료소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 엄마는 미르에게 아빠와의 이혼 사유를 시원스레 밝히지 않는다. 미르는 이혼의 원인과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 단정 짓고 엄마를 향해 날을 세운다. 도시 학교에 두고 온 친구들도, 그렇고 살갑던 아빠를 더이상 볼 수 없는 현실도 엄마를 향한 배신감으로 귀결된다. 미르의 깊은 분노는 아빠와의 분리와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에 기인한다. 친구 같았던 아빠와 분리된 낯선 공간, 아빠의 흔적이 소거된 집안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르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다. 그럼에도 오히려 더 씩씩해진 엄마를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나눠줄 가족 구성원의 부재를 더욱 절감하게 한다.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단절된 상태에서 자신의 불만을 토로할 곳조차 없는 미르에게 스트레스를 분출할 방법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 날을 세우는 방법밖에 없다. 

불편한 미르의 심리에 다가갈수록 진료소 앞에서 멍하게 서 있는 그 아이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각자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선 부모님의 선택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미르를 향해 작가는 느티나무라는 친구를 선물한다.

엄마의 손을 뿌리친 미르는 쿵쾅거리며 자기 방 앞으로 갔다. [중략]
조심스레 문을 연 순간 달빛에 실려 들어온 나무 그림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천장에도, 벽에도, 침대 위까지도 느티나무는 자기 무늬를 그려놓고 있었다. 가지 그림자 하나가 슬며시 미르의 마음을 이끌었다- 본문 중 -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진료소 사택 앞에는 마을의 보호수인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픈 미르는 영겁의 세월을 버티며 수많은 가지를 뻗어낸 느티나무를 보며 자신에게 닥친 현실이 그리 큰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달빛과 하나 되어 자신의 방에 그림자를 드리운 느티나무의 은은한 자태는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가 되어 미르의 마음에 새겨진다. 미르가 달밭마을에 이사와 가장 먼저 마음을 준 대상은 바로 이 느티나무다. 후에 미르는 느티나무의 사계절을 응시하며 시간이 갈수록 깊이와 넓이를 드러내는 나무의 본모습에 감동을 느낀다. 생면부지 달밭마을에서 자신이 가장 기피하고픈 엄마와 살아가야 하는 미르의 분노를 품어준 것은 다름 아닌 고목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의 생명력이다. 

“[중략] 엄마가 지금까지 내 자식이고 아직 어리니까 너를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앞으로 조심할게. 그리고 네가 엄마를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이해해 줄 때가 오길 기다릴게.“ - 본문 중 -

엄마는 자신의 상처를 추스르고 나자 미르를 보기 시작했다. 미르는 자신을 인격체로 대하는 엄마의 말에 다시금 가족의 정을 느낀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큰 상처를 줬던 엄마로부터 회복된 자존감이 미르를 다시 열세 살 소녀로 돌아오게 한다.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한 인간으로 이해해달라는 부탁은 닫혔던 미르의 마음에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가족의 소통이 다시 재개되기 시작하면서 미르의 시야 또한 넓어진다. 가족 구성원과의 정신적 연대와 공동의 가치 추구가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어떻게 견인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2.2. 건강한 슬픔―소희 

하늘말나리. 소희를 닮은 꽃. 하늘말나리는 언제나 하늘을 향해 낯을 들고 서 있다. 바우는 소희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고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이 하늘말나리 같다고 생각한다. 세 아이 중 가장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지만 소희는 늘 남들에게 빛을 비추는 아이다. 하지만 소희에게는 남모르는 두 개의 자신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를 빼놓고 소희는 선생님이나 할머니에게 자기 잘못으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다. 어른들이 어떤 아이를 좋아하는지 알았기에 스스로 그 틀에 맞추어서 살았다.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다 울음을 터뜨리던 미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소희는 살면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본문 중 -

소희는 늘 남들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왔다. 어린아이답게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지만 받아줄 부모님이 없다. 연로하신 할머니는 소희에게 큰 버팀목이지만 점점 짙어지는 병색에 소희는 노심초사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가여운 소희다. 그러나 소희를 키운 것은 부모님의 살뜰한 보살핌도 주변인들의 동정 어린 시선도 아니다. 소희는 환경을 원망하고 변화를 갈망하기보다 수용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늘말나리와 같은 생명력을 지닌 소희는 거저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다. 부모님의 부재와 할머니와의 이별은 소희가 세상을 보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족의 부재라는 크나큰 상실은 소희에게 건강한 슬픔으로 승화되고 있다. 극단의 상실을 겪는 소희에게 하늘말나리 정신을 부여한 작가의 의도 또한 세상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아이들을 위한 헌사로 여겨진다. 

나는 미르가 부러웠다. 그 애가 자기 아빠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재혼했다는 엄마한테 아무런 그리움도 원망도 없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르를 보니 그리움과 원망은 동전의 앞과 뒤 같다. 바우를 봐도 그렇다. 바우를 키워준 건 바우가 추억하는 그 애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도 나중에 추억으로 남아 날 지켜줄까- 본문 중 -

소희는 다른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를 원망하는 모습을 보며 이를 그리움의 반증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부모님에 대한 어떤 그리움이나 원망이 없는 것은 함께 한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그리움과 원망이 그물처럼 얽힌 것을 보며 추억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그러면서 할머니와의 추억이 후에 홀로 남게 될 자신을 지켜줄지 반문한다. 열세 살 소녀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인식에 순간 소희로 멈춰서서 메이는 목을 추스르게 된다. 소희가 혹독한 환경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은 사물을 꿰뚫어 보려는 체화된 의지에서 나온다. 주어진 여건은 절망적이나 소희의 의식은 지금 여기,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머물러있지 않다. 주어진 시련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지치고 버겁다. 그러나 소희는 이면의 의미를 스스로 통찰하고 수용하려는 능동적 차원의 정신 활동이 가능한 아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소희의 추동력은 바로 하늘말나리 정신이다. 

소희의 엄마와 바우의 아빠는 배우자를 잃은 상처 때문에 정작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소희의 할머니는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소희가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마음농사를 지어준다. 인간과 자연이 분리될 수 없듯이 사랑 또한 역할에 맞춰 분리될 필요는 없다. 할머니는 소희의 엄마·아빠로서, 삶의 스승으로서, 역할을 넘나들며 소희의 결핍을 채워준다. 

정말이야. 우리 할머니가 이 할미가 우리 소희 엄마 아빠니까 기죽지 말어.’ 그랬단 말이야.”
소희는 할머니의 말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어 말했다
- 본문 중(147) -

소희는 부모님이 없어도, 겉모습이 초라해도 위축되지 않는다. 이는 사랑에 허기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기 아이들은 양육자의 사회문화적 인식과 도덕적 행위를 학습하며 자연스럽게 사회화된다. 소희는 할머니와의 마음공부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내면적 성숙을 일찍이 경험한다. 그러한 점에서 소희의 또 다른 이름은 ‘너무 자란 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 같다. 나는 아빠의 죽음이 할머니에게 남긴 상처를 지켜보며 자랐다. 그리고 엄마와도 헤어졌다. 죽는다는 건 그 사람만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함께 잃는 일이다.” - 본문 중 -

소희는 바우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제 일인 양 슬프게 울었다. 죽음이 남기는 그림자가 얼마나 길고 깊은지 알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게 된 부모와의 이별은 소희의 내면에 시린 자국을 남겼다. 그래서 미르와 바우의 상처가 더 잘 보이고 애처로웠던가 보다. 소희는 바우의 누나로, 때로는 미르의 언니로 아이들의 곁을 지켜준다. 

돈으로 갚을 빚, 마음으로 갚을 빚이 따로 있는 법이여, 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을 마음으로 능쳐도 안 되는 법이고, 마음으로 갚어야 하는 빚을 돈으로다 해결해서도 안 되지.” - 본문 중 -

할머니의 마음공부다. 도움을 준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보답임을 저렇듯 구수한 말로 되뇌이신다. 요즈음 도시화·개인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조심스럽고 드물어졌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진 빚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알 리 만무하다. 할머니의 말씀을 통해 소희는 사람살이의 참의미를 내재화하고 삶의 방향타를 설정해 나간다. 소희 할머니의 인생 훈수를 음미하다 보면 세상 모든 것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2.3. 기다림의 상처―바우 

바우는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엄마를 잃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바우는 엄마를 계속 기다렸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세상이 얼마나 가혹하고 차가웠는지 어린 바우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와 설명해주지 않는 아빠. 바우는 홀로 버려진 느낌으로 세상에 방치되었다. 가까스로 지탱된 삶은 소희 할머니와 소희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바우 아빠는 아내가 죽고 난 뒤 술에 취해 살았다. 1년 가까이 아들이 있다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행동했고 엄마의 빈자리는 바우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끝내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된 바우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문제아 취급을 받던 아들 때문에 바우 아빠는 학교에 여러 번 불려 가야 했다. 급기야 바우 아빠가 바우를 때리는 일이 생겼고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자 바우 아빠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자아정체성과 자존감이 한창 형성될 시기에 찾아온 고독감은 어린 바우의 상처를 더욱 가중시켰다.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바우는 외부와 소통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주관적 사고가 객관적 언어로 전환되는 사회적 소통의 방식에 서툰 바우는 차라리 소통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바우의 소극적인 성격이나 사색을 즐기는 성향은 사고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바우는 결국 선택적 함구증을 앓게 되고 주변 환경에 의해 증세는 더욱 심화된다. 이를 통해 가정 안에서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아이의 사회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릴 적 바우 엄마는 식물도감을 공부하여 바우에게 여러 식물에 대해 알려주었다. 바우는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엄마가 살아계실 때 배운 식물에 대한 정감으로 엄마와 소통한다. 자신과 아빠를 환하게 비추던 달맞이꽃 같은 엄마를 그리워하고 상사화처럼 만날 수 없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임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독인다. 뒷산 기슭에 핀 들꽃은 바우에게 자연의 치유제다. 바우에게 꽃과 사람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유기체다. 꽃이 지닌 생명력은 의인화되어 바우의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바우가 세상을 향해 다시 입을 열고 주변 세계와 화해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엄마, 오늘은 노란색 달맞이꽃이에요. 엄마가 저녁에 피는 달맞이꽃이 꼭 들판의 작은 생물들을 위해 등불을 켜는 것 같아 기특하다고 했잖아요.

엄마, 내 생각이 짧았어요. 우리 가족은 상사화 잎과 꽃 같아요. 서로 만나지 못해도 상사화의 꽃과 잎이 한 몸인 것처럼 만나지 못하고 살아도 우리는 한 가족이에요- 본문 중 -

느티나무를 보고 마음자리를 넓혔던 미르, 할머니를 통해 인간적 세계관을 넓힌 소희 그리고 바우를 통해 작품은 결국 자연과 사람살이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뿌리가 깊고 야생성이 강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다. 그러기에 달밭마을의 모든 이야기에는 아픔이 있지만 절망스럽지는 않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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