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너도 하늘말나리야》 2
《너도 하늘말나리야》 2
  • 조형민
  • 승인 2023.11.2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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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산책] 5

세상과 화해하는 능동적 존재들, 《너도 하늘말나리야》 2

- 가족과 또래 집단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목차>

1. 들어가며
2. 가족의 상실: 부조화 속 갈등과 화해
2.1. 잃어버린 나의 자리―미르
2.2. 건강한 슬픔―소희
2.3. 기다림의 상처―바우
3. 또래 집단의 공유성: 교차구성에 의한 인물들의 심리적 결속
3.1. 느티나무가 되어―미르
3.2. 하늘말나리의 소원―소희
3.3. 문제아에서 꿈꾸는 아이로―바우
4. 하늘말나리의 꿈


3. 또래 집단의 공유성: 교차구성으로 입체화한 인물들의 심리적 결속

아동·청소년의 발달과업에서 또래 집단은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관계이다.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정서적 감정을 공유하며 공동의 가치를 형성해나가는 자연발생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르, 소희, 바우는 서로에게 위로자인 동시에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나가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정서적 유대감이 긍정적 가치로 공유될 때 아이들은 내재적 문제를 극복하고 부적응을 해소하며 삶의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하늘말나리의 세 아이들은 감정의 표출과 은폐, 승화라는 각각의 방식으로 현재를 견디고 있다.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의 내면을 꿰뚫는 독백과 사색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몰입력을 높인다. 작가의 묘사력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 간의 시점을 교차한 구성력이다. 아이들 간의 첫 만남이나 함께 지나온 시간을 아이들 각자의 시선으로 재현함으로써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입체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러한 구성적 변주는 또래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과 성찰의 순간을 보다 조화롭게 이끄는 촉매이다. 한정된 경험과 인식으로 자칫 인물 개개인에 그칠 수 있었던 서사를 촘촘하게 엮어 하나의 하늘말나리로 완성한 작가의 고민이 짙게 배어난다.

세 소년소녀는 다른 아이들의 얼굴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한다. 작품은 다른 이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알아보고 이를 단서로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관계성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를 통해 아동·청소년 독자들은 또래 집단의 정서적 유대와 결속이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목격할 것이다. 때로는 일인칭보다 이인칭과 삼인칭의 언어가 나 자신을 더 잘 보여주는 법이다.

3.1. 느티나무가 되어―미르

“소장님 계시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어디 아픈가? 아니면 가족이 아픈가? 미르는 조심하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참고 진료실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미르는 활기차게 움직이는 그 아이가 어쩐지 신나거나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 마음 때문일까. 이 세상 무엇이든 눈이 먼저 보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눈이 먼저 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마음이다. 내 기분이 좋았으면 저 아이도 신나 보였을까. 남자애는 나뭇가지에 혼자 앉아 있는 새처럼 외로워 보였다.

- 본문 중 -

미르가 처음 소희와 바우를 만난 장면이다. 할머니와 둘만 살아가는 소희는 최근 더욱 쇠약해진 할머니의 병간호에 진료소를 자주 드나든다. 소희의 속사정을 모르는 미르는 정작 딸의 아픔은 모른 척하면서 소희에게는 친절을 베푸는 엄마를 도리어 원망하기 바쁘다. 바우는 엄마를 잃고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아이다. 바우는 달밭마을의 영농회장인 아빠와 둘이 살아가는데 소희 이외의 사람에게는 입을 떼지 않는다. 운동장에서 자전거 묘기를 부리는 천진난만한 소년이면서도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입을 닫은 여린 새 같은 아이다. 달밭마을을 곧 떠날 생각인 미르는 두 아이와 친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미르는 자신에게 닥친 결핍을 통해 다른 이의 아픔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얻게 되었다. 혼자인 줄 알았던 소희는 아이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감지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희와 바우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간다.

“엄만 네 아빠와 헤어지면서 네가 딸이라는 사실에 많은 위안을 받았어. 아직은 어리지만 언젠가는 같은 여자로서 친구가 돼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엄말 미워하는 걸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엄마랑 사는 게 그렇게 싫고 힘들면 아빠한테 가도 좋아.”

- 본문 중 -

미르는 아빠의 재혼 소식을 접하고 소희와 바우 앞에서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헤어날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힘들 때 자신의 곁을 지켜준 소희를 통해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아빠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지만 소희의 상황은 다르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덤덤해하는 소희의 표정을 보며 미르는 더욱 마음이 쓰인다.

미르도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어른들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소희에게 연민이 일었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 없이 한 말들이 혹시 소희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 본문 중 -

미르는 그간 모든 일에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왔다. 그러한 자신과 달리 소희는 솔직한 날것의 심정을 표출해 주변을 곤란하게 하는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고민하며 다른 사람을 헤아리고 있다. 미르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소희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기분에만 충실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솔직함과 무신경함의 차이는 다른 이를 향한 배려와 존중감에서 비롯된다. 누구보다 소희를 아끼게 된 미르는 소희의 아픔을 통해 심리적 저지선을 넓혀가며 한층 성장한다.

소희야, 네 덕분에 달밭마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너와 함께 한 시간들 영원히 기억할 거야. 그리고 함께 넣은 잎은 느티나무의 마음자리야. 네가 어디 있든 달밭의 느티나무가 널 따뜻하게 해 줄 거야. 그 나무와 함께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사랑해.

- 본문 중 -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을을 떠나는 소희를 향해 미르는 자신이 따뜻한 느티나무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미르는 이제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자신의 주변에서 비슷한 상황과 문제를 지닌 또래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미르에게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의 재혼은 소년기 전반을 지배하는 아픈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르는 자신이 마주한 부조리한 세계와 화합하기 위해 자신을 느티나무 가지로 변모시켜 나간다. 아빠의 재혼 소식에 빗속에서 무너져 울었던 미르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내어 뻗는다.

3.2. 하늘말나리의 소원―소희

어른들의 틀에 맞춰 모범생이자 철든 아이로 살아온 소희에게 미르는 철부지다. 진료소 소장님 같은 엄마를 두고도 불행해하는 미르를 보며 소희는 자신이 오히려 더 마음부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시샘과 질투로 미르를 흠집 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혜안을 통해 자존감을 높인다. 소희는 미르를 통해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허상보다 현재의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소장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미르에게 좀 더 잘 했어야 했다. 그 애가 오길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갔어야 했다. 아이들이 뭐라고 뒷소리를 하든 내가 먼저 마음을 열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내가 미르보다 더 마음부자인 것 같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자기가 가진 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기 전에는 내가 그 애보다 훨씬 부자다.

- 본문 중 -

“나도 여기서 계속 너랑 바우랑 지내고 싶지만 작은집으로 가야 돼. 우리 작은아빤 나 때문에 할머니를 모셔 가지 못했어. 너 우리 작은아빠 막 우는 거 봤지? 내가 여기 남으면 작은아빠 마음이 편치 않으실 거야, 고모도 반대하시고.”

- 본문 중 -

겨울의 끝자락에서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소희는 작은 아빠네로 옮겨 살기로 한다. 달밭마을에서 함께 머물기 원하는 미르의 마음을 뒤로 하고 소희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모시지 못한 작은 아빠의 죄책감을 헤아려 이사를 결심한다. 익숙한 공동체를 떠나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하는 용기가 하늘말나리, 곧 소희답다.

소희는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차창을 내린 소희가 말했다.

“너희들도 하늘말나리야!”

미르와 바우는 느티나무 아래에 서서 소희를 태운 트럭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 본문 중 -

소희는 달밭마을을 떠나면서 두 친구에게 하늘말나리를 외친다. 세상에 위축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는 자기주도적 삶에 대한 의지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구심점이 되었다. 소희를 주축으로 공유된 정신과 이들의 우정은 아이들의 성장에 소중한 심리적·사회적 자원이 되어줄 것이다. 떠나는 소희를 향한 아이들의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 것처럼 독자들의 여운 또한 한참을 이어갈 것이다. 늘 밝고 환한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드는 소희의 소원은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하늘말나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3.3. 문제아에서 꿈꾸는 아이로―바우

바우는 미르가 날카롭게 구는 이유를 이해했다. 자신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엄마 잃은 슬픔을 나타냈듯이 미르는 가시를 세운 모습으로 아빠와 헤어진 슬픔을 표현하는 거라고 바우는 생각했다.

- 본문 중 -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의 방황기 동안 소희 할머니와 소희는 바우를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그림자처럼 자신을 지켜주는 소희와 자신을 거둬 먹인 소희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바우의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우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소희에게 자신의 아픔을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소희가 전부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우는 미르의 날 선 행동을 보며 소희에게 미처 털어놓지 못한 그리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이 입을 닫는 것으로 다친 마음을 표현했다면, 미르는 가시 돋친 행동으로 슬픔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바우는 미르를 통해 자신이 마음의 문을 닫은 이유를 직시하고 슬픔을 객관화한다.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돌아보고 치유한 후 다시금 세상을 향해 말을 시작하는 바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볼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세상과 다시 화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선이 좋다, 색감이 좋다, 구도가 좋다 하는 식으로 그림의 겉만 보고 평가하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또 깨달은 게 있었다. 그동안 남의 그림을 겉만 보고 평가했으면서 자신은 마음까지 이해받길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 본문 중 -

바우는 꿈이 화가였지만 미술을 통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미술치료사가 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병을 그림으로 치료한다면 무척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미르는 그림의 내면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간 자신이 남의 그림을 피상적으로만 보려 했음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함구한다는 이유로 문제아 취급을 받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순간적인 모습만을 포착한다면 사물에 대한 이해는 그저 표면적 앎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실재와 그 의미를 보려는 시도가 있다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 주변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세계는 늘 개개인의 기대치를 배반하지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주변과 교섭하고 스스로를 중재한다. 입을 닫은 바우도 이러한 노력 속에서 결국 혼자 남겨져 자신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아픔을 공유한 친구들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하고 다시 세상과 화해한다. 엄마의 부재라는 시련의 벌판에 홀로 서서 문을 닫고 멈춰버렸던 소년은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4. 하늘말나리의 꿈

세 아이들의 가슴에 맺힌 아픔은 이들을 하나로 이어준 접점인 동시에 자기 극복과 성장의 토양이 되었다. 작품 안에서 누구 하나 온전히 마음 편한 인물들이 없었지만 아이들의 부모까지도 결국 새로운 인생길에서 정체감을 극복해간다. 저마다 다른 아픔을 지녔지만 관계의 끈으로 이어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절묘히 어우러져 모난 곳이 없었다.

호젓한 달밭마을의 마을 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진료소와 느티나무의 정경은 마치 눈앞의 그림처럼 펼쳐져 작품의 미감 또한 높여준다. 아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준 온기 어린 달밭마을은 작품을 지탱해준 공간적·정신적 배경이 되었다. 척박했던 그들의 마음에 숨결을 불어 넣어 준 것은 자연이요, 사람이요, 시간이다.

문학은 결국 우리 삶의 이야기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 자기만의 아픔을 겪고 있는 또 겪게 될 아동·청소년들이 환경의 지배를 넘어 세상과 화해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폐허와 같은 마음에도 느티나무와 하늘말나리가 심긴다면 우리 각자의 이야기도 계속될 것이다.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드는 자신이 곧 하늘말나리임을 당당히 선언하고 자신만의 꿈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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