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송미아의 독서칼럼] <18>
[송미아의 독서칼럼] <18>
  • 미디어제주
  • 승인 2023.12.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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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바람을 이뤄낸 조엄의 애민정신 『고구마 꽃』②

<목 차>

1. 『고구마 꽃』의 서사적 구조

2. 주인공의 성장배경과 세계관
가) 주인공 엄이의 성장 배경
나) 하늘이 맺어준 인연
다) 목숨을 불사한 리더의 신념

3. 고구마 꽃을 피운 애민정신
가) 애민정신에서 만난 고구마
나) 신의로서 얻은 고구마 종자
다) 고구마를 지켜준 우정의 힘

4. 서사에 겸비된 서정적 문학성
가) 시대의 아픔과 염원을 담은 노래
나) 절박함을 담아낸 삽화

3. 고구마 꽃을 피운 애민정신

가) 애민정신에서 만난 고구마

조엄은 일본 오사카에서 행장을 푼 지 얼마 안 되어 대마도로 갔다. 일본은 먹을거리가 널려 있었다. 우연히 만난 네 살 또래의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조그만 무쇠솥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꺼내 먹은 것이 고구마였다. 고구마를 먹어본 조엄의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작은 아이’를 만난 것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고귀마*, 고귀마, 고귀마....” 엄의 머릿속은 온통 고귀마 생각뿐이었다. 온갖 산해진미가 올라온 진수성찬의 밥상도 고귀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기름진 고기와 과일과 생선이 넘쳐난다고 한들 그것들이 백성들의 차지가 되지 않을 터, 백성들에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었다.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배가 부를 리 없는 그림 속의 떡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고귀마라면 얼마든지 백성들의 배를 불릴 수가 있었다. (p133)

조엄의 머릿속은 온통 고구마 생각뿐이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구마를 조선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엄은 왜 고구마를 조선으로 가져가겠다고 했을까. 고려시대 때 문익점 선생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추위에서 벗어나게 했듯이, 조엄도 고구마를 가져와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이런 조엄의 애민정신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조엄은 이조판서였던 아버지의 올곧은 성정을 보고 자랐다. 서당에 다닌 이후 다른 처지에 놓여있는 친구들의 사회상을 대면한다. 그러나 조엄은 서당 친구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려 애쓴다. 그의 이런 이타적 태도가 구체적 애민 의지로 거듭나게 되는 시점은 홍경이의 동생 ‘작은 아이’를 만나면서다. 먹지 못해 축 처진 작은 아이의 손에서 느껴졌던 온기, 힘없는 눈빛을 만나며 조엄은 조선의 배고픈 백성들을 가슴 깊이 새기기 시작한다.

조엄은 고구마를 보는 순간 조선 백성들을 상징하는 ‘작은 아이’를 떠올렸고 이 고구마만큼은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는 오직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구마 종자를 조선 땅에 꽃피우고 싶었다.


# ‘고귀마’는 고구마를 일본 발음으로 고귀마라 불러서, 조경희 작가는 동화 전개 흐름을 고려하여 고귀마라고 표기했으나, 독서 평론에서는 편의상 ‘고구마’로 통일하였다.
 

나) 신의로서 얻은 고구마 종자

조엄은 일본인들을 만나면서 예의와 신의로써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대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조엄의 진정성 있는 태도는 대마도주의 호감을 샀다. 조엄이 조선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오자, 대마도주가 무소의 뿔로 만든 귀하고 비싼 활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러나 조엄은 단호히 거절하고 대신 고구마 종자를 원했다. 서로 주고받은 품목을 빠짐없이 기록해 조정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인 관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고, 대마도주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이는 하루빨리 고구마 종자를 얻고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미 쇼군께 고했으니 허락을 얻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불안·초조하게 대마도주를 기다리는데 고구마가 아닌 편지 한 장만 달랑 보내왔다. 조엄은 대마도주가 서로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나라에서 엄격히 통제하는 일임에도 대마도주는 조엄의 절박함을 공감하며 애쓴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엄이 중얼거렸다. 바로 그 순간, 대문이 열리고 대마도주가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대마도주는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엄은 달려가 상자를 받았다. 무거웠다. (P151)

'고구마 꽃' 145쪽 / 흩날린 그림
'고구마 꽃' 145쪽 / 흩날린 그림

고구마 종자를 펼쳐보는 조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엄은 대마도주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서로의 시문을 주고받으며 이별했다. 신의(信義)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예의와 믿음으로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엄과 대마도주처럼 호형호제(呼兄呼弟)의 깊은 정을 나누며 서로를 위한 일이 무엇일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신의’가 형성된다. 이는 결국 조선 땅에 ‘고구마’ 종자라는 귀한 뿌리를 내리게 했다.

다) 고구마를 지켜준 우정의 힘

고구마 넝쿨은 최홍경의 봉긋한 무덤에 뒤덮여 있었다. 고구마 순이 뿌리를 내리고 결국 최홍경이 키워낸 고구마가 조선 팔도로 뻗어나간다. 작가는 홍경이의 무덤가에 고구마 넝쿨을 뿌리내리게 설정함으로써 조엄과 최홍경에게 하늘이 내려준 인연임을 강조한다. 서로에게 느꼈던 신의는 그토록 원하던 그들의 꽃을 피워내고 번식시킨다. 고구마 종자의 전파 과정을 보면 주인공 조엄을 비롯해서 친구 최홍경과 주변 인물들의 의지가 결합한 결실임을 알 수 있다.

고진숙의 역사 동화 『문익점과 정천익』의 내용을 보면 문익점이 어렵게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왔지만, 그 씨앗을 재배해서 옷감을 만들기까지는 정천익과 여종 등 주변 장인들의 노력으로 결국 우리가 입는 옷감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고구마 종자도 마찬가지다. 조엄이 일본에서 종자를 얻는 과정에서 종자를 전파하기까지 항상 함께 따라다녔던 최홍경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목숨도 불사할 만큼 깊은 우정의 힘으로 함께 고구마 꽃을 피워냈다.
 

4. 서사에 겸비된 서정의 문학성

가) 시대의 아픔과 염원을 담은 노래

노래 가사는 시적 울림을 내포한다. 특히 서사적 색채를 드러내는 가사는 시대의 울음소리를 반영한다. 삶의 끝자락을 잡고 사는 백성들의 절실함이랄까. 서동요가 어린이의 입을 통해 불림으로써 공주를 아내로 맞았던 신분 상승의 승화 과정처럼, 서민들의 노랫가락에는 그들만의 아픔과 절실한 염원을 담아낸다. 조경희 작가는 동화 내용 중간마다 노랫가락을 삽입해서 당대의 절박한 현실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는 서사적 이야기가 자칫 전달성과 교훈성에 머무르지 않도록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서정적 문학성을 겸비한 구성이라 본다.

어디까지 가니?/우리집까지 간다// 무슨밥 먹었니? 모래밥 먹었다(P22)

일러라 찔러라/ 늬 아버지 상투에// 돈 한 닢 찔러주면/깐댁깐댁 끄덕끄덕 (P26)

당시 조선 사회는 당파싸움으로 노론의 세력이 위세를 떨던 시기였다. 위 노래는 최홍경과 서당 친구들이 노론 집안의 자식인 주인공 조엄을 놀리는 노래다. ‘돈 한 닢 찔러주면/깐댁깐댁 끄덕끄덕’의 가사를 보면 당파싸움으로 인한 개인의 물욕과 영달에 초점을 맞춘 집권층의 비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슨 밥 먹었니?/ 모래밥 먹었다’ 이 노랫말 역시, 가뜩이나 오랜 흉년으로 어려운 때에 노론들은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자기 배 속만 채우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상을 아이들 노랫말로 반영했다는 것은 역사 동화의 특성상 주요 독자가 어린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지금의 삶과 관계되는 과거의 사실을 재조명하고 심미적 서정성을 반영하는 작가의 의도라 본다.

우리 엄마/어데 가고 못 오시나// 밤길이 어두우니/달이 뜨면 오시려나/날이 새면 오시려나//우리 엄마/ 언제 다시 오시려나(P63)

아가 아가 울지 마라/ 내년 삼월 다시 오면// 뒷동산에 죽은 나무/잎이 피고 꽃이 피어//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를 찾아온다더라. (P64)

조엄이 자기 밥을 덜어 한톨 한톨 모은 쌀을 보자기에 들고 최홍경 집에 찾아갔을 때 구슬프게 들려왔던 노랫소리다. 이 노래는 어머니가 떠나간 상황에서 어머니를 대신하여, 작은 아이에게 그리움과 기다림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사다.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달래며, 뒷동산에 죽은 나무가 잎과 꽃으로 다시 살아난 것처럼 내년 삼월에 작은 아이를 찾아온다고 희망을 주고 있다.

이 노래를 통해서 등장인물 최홍경이 부모 없이 혼자 어린 동생을 키우며 힘겹게 살아가는 처지임을 알게 된다. 이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주도하여 조엄을 못살게 굴었던 상황과 판이하게 대비된다. 얼굴 빨개지며 칭얼대는 작은 아이를 업고 구성지게 자장가를 부르는 최홍경의 목소리는 모성애 그 자체다. 핍박과 굶주림 속에서도 삶에 대한 아련한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따뜻한 심정으로 동생 ‘작은 아이’를 달랜다. 이 구슬픈 노랫소리는 서당에서 조엄을 못살게 굴었던 최홍경의 ‘부정적 인물의 전형성’을 승화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처럼 노랫가락은 이야기글 만으로는 해소 안 되는 가사와 멜로디로 감성과 정서를 자극해 준다. 사랑, 이별, 희망,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고 듣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기도 한다. 이처럼 『고구마 꽃』의 조경희 작가는 중간에 노랫가락을 설정함으로써 이를 접하는 독자들과 최홍경의 거리를 좁혀준다. 아울러 과거 집권층의 권력다툼이 과거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도록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며, ‘작은 아이’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소외된 약자들을 돌아보게 한다.

나) 절박함을 담아낸 삽화

삽화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를 더 깊게 연결해 준다. 『고구마 꽃』의 삽화들은 한국화 기법으로 필묵의 농담(濃淡)을 가하여, 시대의 언어를 그림으로 펼쳐내며 독자의 감상 폭을 넓혀주고 있다.

<그림 1> 동생을 버리다

'고구마 꽃' 75쪽 / 흩날린 그림
'고구마 꽃' 75쪽 / 흩날린 그림

먹을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그래서 동생 아기에게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여 피똥을 누게 하는 것이 가난이라던 홍경이, 조엄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편 최홍경은 동생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이 삽화는 동생을 살려야겠다는 심정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부잣집 대문 앞에 아기 동생을 버리러 가는 장면이다.

섬세한 붓 터치로 홍경이가 동생을 버릴 만큼 백성들이 굶주렸던 조선시대 배경을 생각하게 한다. 짚신을 신은 최홍경의 눈빛과 조엄의 검정 신을 신은 발걸음을 생생하게 따라가는 독자들 가슴도 아려온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하는 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안겨준다.

<그림 2> 우정의 힘으로 지켜낸 고구마

'고구마 꽃' 140쪽 / 흩날린 그림
'고구마 꽃' 140쪽 / 흩날린 그림

최홍경은 조엄과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의형제이다. 고구마를 조선땅으로 가져가기로 마음먹은 친구 조엄을 보면서, 자신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조엄을 도와 고구마를 조선 땅으로 가져가고자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비선 편에 고구마 종자를 숨기고 조선 땅으로 먼저 떠나게 된다. 최홍경 허리춤에 애지중지 감춘 고구마를, 뱃사람들이 금은보화인 줄 알고 옷섶을 뒤지는 소동이 벌어졌고, 뱃사람들은 고구마를 바다로 던져버린다.

이 삽화는 최홍경이 목숨을 걸고 고구마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어 고구마를 껴안고 사흘 밤낮을 바다에서 헤매던 장면이다. 화가 흩날린은 고구마를 끌어안은 모습을 채색 수묵화의 색조 속에 담아낸다. 이처럼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가슴에 꼭 껴안고 있는 고구마 종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조엄과 의형제로 지내며 우정을 불태웠던 신의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며, 또 하나 고구마 종자를 반드시 지켜내려는 애민사상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최홍경이 사흘 밤낮 바다를 헤엄쳐 다니던 비현실적인 동화의 내용 속으로 용해시켜 놓을 수 있다는 건 이러한 삽화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물속에서의 질감표현이 좀처럼 쉽지 않을 텐데, 화가 흩날린의 담담한 채색의 빛깔 처리가 독자들에게 색다른 안도감을 준다.

흩날린 그림 작가의 『고구마 꽃』에 실린 삽화들은 핍박과 굶주림 속에서도 당시 민초들의 삶에 대한 절박성과 민족정서를 담아내는데 한몫을 거든다. 특히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부드럽고 따뜻한 필법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절박함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언어를 통한 감정이입과 함께 그림이 주는 심미적 감상의 여운을 독자들에게 안겨주는데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마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철학과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사를 이끌어가는 주체적 생각의 바탕이 철학이라면, 그 생각을 헤아려 주는 수학의 영역은 현실성을 부각해 준다. 시대, 시간, 돈, 음식, 바람 등 어휘 본질의 철학과 함께 그들의 깊이를 가늠해 주는 숫자가 따라다닌다. 조경희 작가가 이 작품의 매개체로 삼은 ‘천개의 바람’이라는 메타포 역시 그렇다. 주인공이 그토록 염원하고 있는 마음을 ‘바람’이라 했다면, 그를 형용하고 있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천이라는 수는 그 바람의 깊이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사를 이끌고 가는 것은 인물이다. 역사로 인해 한 인물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고, 한 인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운다. 조경희 작가는 조엄이라는 인물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면서 고구마를 조선 땅으로 가져와 퍼뜨리기까지의 서사적 과정을 동화로 재창작하며, 화려한 것만이 문화유산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 혹은 주변 사물에도 조상의 얼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작품 곳곳에 삽입된 노랫가락과 시적인 유려한 문체, 삽화 등 서정적 문학성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는 『고구마 꽃』은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 ‘천개의 바람’을 통해서 독자들 곁에 고구마 꽃으로 피어난다. 작가는 주인공 조엄의 소년기에서 성년기까지 일대기를 전개하며 주인공에게 내재한 휴머니즘의 면모를 곳곳에 설정한다. 당파를 초월한 최홍경과의 우정, 자기 밥을 덜어 이웃에 나누는 이타심, 폭풍우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리더의 주체적 신념, 오랑캐라고 생각했던 상대 나라 사람들에게 베푸는 예의와 신의 등 주인공의 태도에서 다양한 덕목의 역량을 보여준다.

서두에서 필자는 ‘꽃은 아픔·절박함·성취’의 도식을 끌어낸다고 했다.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일을 바라본다는 것은 한 인물 한 시대 속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과정과도 같다. 주인공 조엄이 삶의 꽃을 피워냈던 일대기에서도 우리는 그 도식을 만날 수 있다. 흉년과 당파싸움으로 아픔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동일시하며, 그들을 위한 절박한 바람은 고구마 종자를 조선 땅에 뿌리 내리고자 했던 집념으로 표출한다. 결국 천개의 바람은 조엄이 그토록 염원했던 ‘고구마 꽃’으로 승화되었고, 『고구마 꽃』과 조우하는 독자의 가슴에도 희망의 꽃을 피운다. 꽃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기저에는 생존 또는 자손 번식이라는 원시적 본능이 잠재해 있다. 굳이 ‘고구마’라는 결과물에다 ‘꽃’의 상징적 의미를 부착시킨 저자 조경희의 숨은 의도를 헤아려 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하면서 본고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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