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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평국 선생의 독립운동 의지를 잊지 않을게요”
“강평국 선생의 독립운동 의지를 잊지 않을게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8.11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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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학원총동문회, 강평국 선생 알리기 활동 ‘적극’
2019년 독립운동가 추서…15일 생가터 표지석 제막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후배들의 열정이 선배를 독립운동가로 추서하게 만든 데 이어, 해당 독립운동가의 생가터에 대한 관심도 촉발시키고 있다.

후배들은 바로 신성학원총동문회이며, 후배들의 노력으로 관심을 받는 독립운동가는 강평국 선생(1900~1933, 건국훈장 애국장)이다.

신성학원총동문회 최정숙기념사업단(당장 오순덕)은 강평국 선생 추서 2주년을 맞아 올해 8월 15일인 광복절에 ‘독립애국지사 강평국 생가터’ 표지석 제막식을 갖는다. 8월 15일 오후 4시 강평국 선생의 생가터에 가로 40㎝, 세로 30㎝의 표지석이 세워진다.

15일 세워질 강평국 선생 생가터 표지석.
15일 세워질 강평국 선생 생가터 표지석. ⓒ신성학원총동문회 최정숙 기념사업단

강평국 선생은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 활동을 펼쳤지만 지난 2019년 8월에야 독립운동가로 추서됐다. 같은 시대에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이들은 일찌감치 독립운동가로 추서됐으나, 강평국 선생은 항일운동 업적을 다른 이들에 비해 늦게 인정받은 셈이다.

후손이 없는 강평국 선생에겐 어쩌면 독립운동가라는 타이틀은 먼일이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추서 배경엔 후배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성학원총동문회는 지난 2015년부터 서울과 제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의 길 따라 걷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강평국 선생 등 동문들의 업적을 알렸다. 신성학원총동문회는 2019년엔 ‘독립의 불꽃, 다시 일어나라’를 주제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강평국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서훈해 줄 것을 촉구하는 서명도 진행했다. 그 뜻이 전달돼 강평국 선생은 그해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강평국 선생의 생가터는 제주시 일도1동 1390번지로 확인됐다. 신성학원 동문들이 강평국 선생의 흔적을 찾은 결과였다.

강평국 선생은 ‘최초’ 혹은 ‘유일’이라는 타이틀이 많다. 그는 신성여학교 1회 졸업생으로, 제주 첫 여성 교사였다. 일본의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는데, 고등 교육기관에 유학한 첫 제주여성이기도 했다. 1926년 일본에서 창립한 도쿄조선여자청년동맹 초대 집행위원장이었고, 1927년 재일본동경동부 조선노동조합 창립총회 때 임원으로 선출된 유일한 여성이었다.

황사평 천주교성지에 있는 강평국 선생 추도비. 미디어제주
황사평 천주교성지에 있는 강평국 선생 추도비. ⓒ미디어제주

강평국 선생은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일본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쳤다. 일본에서 늑막염을 앓아 제주에 돌아와 요양을 하면서도 독립운동을 펼쳤다. 1933년 1월 전남 광주에서 그의 비밀결사 활동이 발각된 뒤, 병과 싸움을 하던 그는 광주로 끌려갔으며 그해 11월 33세의 나이로 이별을 고했다.

강평국 선생은 후손도 없어 그의 묘는 찾을 길이 없고, 황사평 천주교성지에 추도비만 세워져 있다. 외롭던 추도비였으나 이젠 생가터 표지석이 그의 흔적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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