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문식성, 문해력의 씨앗 -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2
가정문식성, 문해력의 씨앗 -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2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09.29 13:26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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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칼럼 13]

앞마당 능소화가 모든 일에 과정이 있음을 전해준다. 능소화의 여린 가지를 잘라 흙에 묻고 한참 후에 땅을 살짝 열어보니까 하얀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뿌리를 만났을 때의 감동. 솜털 같은 새로운 조직이 내 힘으로 이어간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땅속에서 소멸한 줄만 알았던 이 줄기가 초토를 뚫고 서서히 초록 쌍떡잎을 피워낸 것이다. 작년 여름 꺾꽂이 이후 변화무쌍한 사계절을 거치면서 어느새 능소화에 대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기쁨에는 언제나 시작점이 있으며 과정의 환원임을 생각하게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여름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에 함께한 가족들처럼 말이다. 올해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에 참여했던 가정들은 이제 한 계절을 보내면서 문해력의 씨앗, 가정문식성의 영토를 넓히고 있다.
 

가정문식성, <문해력>의 씨앗

부모는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교사일 뿐만 아니라 독서 태도와 습관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기에 형성된 독서에 대한 이미지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정에서의 문식성 환경과 이후 만나게 되는 교육 현장에서의 문식성 환경을 거치며 아이들은 독서 능력을 기른다. 문식성 환경( literacy environment)이란 읽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들의 총칭이다. 가정문식성은 가정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읽기, 쓰기, 대화하기, 읽은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부모가 읽고 말하는 행위, 듣기, 읽을거리 등을 포괄한다. 즉 가정에서 읽기를 조장하는 모든 문해의 환경을 말한다. 가정문식성 환경이 좋은 아이들은 자신이 만나는 유치원,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시기에 적절한 문해력(독서 능력)을 발휘한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해석하는 단계를 넘어 작가의 의도나 그 안에 숨은 다양한 주제를 유추할 수 있으며, 자기 삶과 사회 이면의 다양한 상황까지도 연결하여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따라서 가정에서의 문식성 환경은 문해력의 터전이 되며, 이후 교육 현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학습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학습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자신감 있게 학교생활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스스로 계획하여 학습할 힘, 자기 주도성이 길러진다. 결국 가정문식성 환경은 문해력을 확장해 주는 기반이 된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가 필요한 이유다.
 

왜 <가족>인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명확하게 알수록 외부 영향에 대한 면역력도 더 높아진다. 하지만 어쨌든 환경은 항상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든 변화는 혼자서 하기보다 함께할 때 더욱 쉽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도 그렇다. 혼자 생각할 때보다 같은 책을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눌 때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발달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근접 발달 영역을 자극해 꺼내 주는 ‘비계설정’을 중요시한다. 여기서 비계(飛階·scaffolding)는 도움을 받는 영역을 뜻한다.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도움을 받는다면 아직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 있는 근접 발달 영역을 꺼내 주어서 아이들의 학습된 현재의 영역을 더 넓혀 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비고츠키 이론에 의하면 온가족 비계의 힘으로 아이들은 가장 기반이 되는 독서습관을 건강하게 형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 습관이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독서습관은 가정 내 독서문화에서 출발하는 바, 온가족이 책을 읽고 한자리에 모여 실천할 수 있는 아래의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 매월 가족 독서 회의: 가족 구성원 독서 생활 지침 의논, 가족 행사 및 기타
● 하루 30분 자녀와 책 읽기: 주 3회 이상 함께 하기- 시간/요일/장소 정하기
● 책 발자국 남기기: 가족이 읽은 책 한 줄 느낌, 가족이 읽은 책 제목
● 매월 가족 독서 토의: 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감상과 주제 나누기
● 매년 가족 독서 워크숍: 가족 독서 신문 –인상 깊은 결과물/돌아보기/계획하기
● 독서 공간 만들기: 집안 곳곳에 책 있는 환경, 몰입 독서를 위한 아늑한 공간 만들기
● 도서관 및 서점 나들이: 책과 함께 하는 문화 생활 즐기기
● 책 선물 및 소장의 기쁨 주기: ‘나만의 책’에 대한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온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정서적·인지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한 비계가 되리라 본다. 부모의 일방적인 지침이 아닌 온가족 독서 회의를 통해 실천 지침을 의논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가족 독서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문식성 확장 활동은 문해력의 씨앗을 자극하는 든든한 영양제가 된다.

왜 <맛>인가?

책은 생각의 집이다. 신체 건강을 위해서 매일 밥을 챙겨 먹듯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책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식구(食口)라는 한자를 보면,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을 뜻한다.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는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은 식구, 즉 가족이 필요하다. 함께 밥도 먹고 책도 읽었을 때 성장할 수 있는 비계(scaffolding)가 필요한 시기다. 여기서 독서습관이 만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행복하게 내면으로 들어와야 한다. 책을 숙제처럼 의무감에서 만나게 되면 맛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생길 수 있도록 여기저기 책이 뒹굴어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처럼 가장 편안한 시간에 가족과 책읽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책이 맛있어지려면 정독의 힘을 길러야 한다. 정독했을 때 아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고, 상상하는 것, 생각거리가 생긴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한다. 이때 책이 재밌어지며 좋다는 감정이 생긴다. 밥이 맛있는 것처럼 책도 맛있게 스며드는 것이다.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필자가 강의 현장에서 만난 부모들의 문제점 중 하나가 분량과 속도에 집착하는 것이다. 책을 꼭꼭 씹어 읽기보다는 무조건 많이, 빨리 읽는 것에 욕심을 낸다.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씹지 않고 먹는 것과 같다. 밥을 씹지 않고 급히 먹었을 때 소화가 안 되고 체한다. 소화가 안 되었을 때 신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책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많이, 빨리 읽히기만을 권장하는 것은 내용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거나 친구들과 가족들과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안 준다는 것이다. 생각거리를 찾을 여유가 없어진다. 이 외에도 독서가 주는 여러 기쁨을 차감해 버린다. 우리는 여기서 “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열 사람이 같이 읽어서 열 사람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낫다”는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독서는 책 내용을 아는 것에 한정하지 않고 읽은 분량만큼 ‘생각거리’를 얻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생각을 통해 통합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에머슨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라고 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친구 또는 가족과 생각을 꺼내고 녹이고 합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 바로 융합(融合) 활동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서로 소통할 힘, 비판적으로 바라볼 힘, 창의력을 생성할 힘, 서로 협업할 힘을 만난다.

필자는 한 권의 책을 최소 두 번 이상 정독하는 것을 권장한다. 먼저 발견하며 읽는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표지의 그림에 대해 상상해보거나 추측해보는 독서 전 활동을 하고 읽어보는 것도 좋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소리 내어(또는 묵독) 읽는다. 소리 내어 정독했을 때, 1차 읽기에서 느끼지 못했던 내용들을 더 꺼낼 수 있다. 아울러 소리 내어 읽기 과정에서 읽기의 유창성과 말하기와 듣기의 기초 체력을 다질 수 있다. 그리고 읽기 유창성이 확보된 친구들은 주인공의 행동 또는 상황을 그려보거나 작가가 숨겨놓은 상징을 추론하며 묵독으로 읽는다.

이렇게 두 번 이상 정독 후에는 ‘생각 꺼내기’ 활동을 권장한다. 같은 책을 읽은 소그룹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주제와 연관된 자신의 이야기나 다양한 상황으로 확장해 토의 및 표현해 보는 독후 활동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 연령에 따라 이야기 낭독하기, 그림으로 이야기하기, 연극으로 나타내기, 뒷이야기 상상하기, 토의·토론하기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독후 활동을 시도할 수 있다

독서문화를 가정까지 연계하기 위해서는 독서라는 행위가 즐거워야 한다. 읽기의 즐거움이 가족 구성원들의 정서적 교감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장기적인 체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입출력을 위한 일차원적 독서에만 머무른다면 양서 중심의 독서가 아닌 신문과 잡지(만화, 동영상)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긴 호흡을 요구하는 한 권의 책이 외면당하는 세태가 안타까울수록 가정 안에서 더욱 책을 붙들어야 한다. 특히 독서를 디지털 매체들과의 경쟁선 상에서 이해하기보다는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 간 협력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에 대해서는 향후 이어지는 칼럼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전주 완산 “소그룹과 가정에서의 문식성” 기조 강의.
전주 완산 “소그룹과 가정에서의 문식성” 기조 강의.

사계를 지내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능소화는 가지마다 흡착 뿌리를 만들어냈다. 흡착 뿌리는 자기 신체를 단단하게 도와주는 비계의 역할을 한다. 그 힘으로 쌍떡잎을 수없이 피워냈고, 위로 줄기가 쑥쑥 뻗어나갔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여름에 제주에서 시작되었던 이 캠페인이 제주에 뿌리내리며 전주 완산까지 뜨거운 열기를 타고 이어졌다.

참여한 많은 가족이 남긴 감동어린 소감들은 서로에게 좋은 동기가 되었다. 이후 여기저기서 실천하는 목소리가 문해력의 씨앗, 가정문식성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의 줄기는 10월 독서의 계절을 맞이하며 부산 진구, 부산 해운대를 향해서도 뻗어가고 있다.

 
 

-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평생교육원 전문강사
- 부모교육 강사, 청소년 독서지도사
- 제19회 소년해양신인문학상(독서평론)
- 제21회 한국아동문학회신인상(동화)
- (사)한국아동문학회 회원
-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소그룹과 가정에서의 독서지도를 통한 독서습관 형성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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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2022-10-06 10:55:45
문해력을 키운다는 것은 읽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현미영 2022-10-02 13:10:29
밥을 같이 먹는 식구가 서로 살아갈 힘을 주고 받듯 책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같은 원리라는 말이 깊이 와 닿네요~

정미주 2022-10-01 01:20:06
아이들 어릴적 책을 읽어 주면서 정서적 교감했던 행복한 기억이 있네요.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어주기를 못했는데 다시 도전해봐야 겠네요.

이지희 2022-09-30 18:56:04
혼자보다 함께 해야 하는 현 시대에 필요한 맞춤형 독서지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달팽이 2022-09-30 17:26:52
잘 읽었습니다. 내년엔 저도 참여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