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1:35 (화)
“얘들아 알지? 너희들 행복을 위해 제주에 왔다는 걸”
“얘들아 알지? 너희들 행복을 위해 제주에 왔다는 걸”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12.08 14: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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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정을 지키려는 재릉초 아빠들

2년의 육아휴직을 받기도, 퇴사를 하기도

“아빠는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사람”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아빠는 바쁘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다? 정말 그럴까. ‘아빠’라는 단어는 이상하게도 아이에겐 ‘무관심’으로 통용되곤 한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입시의 성공 조건을 들 때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세상에 떠도는 이런 말은 어찌 보면 ‘아빠’라는 존재를 부정의 대명사로 만드는 사회의 광기로도 비친다.

아빠는 회사에만 매달리고, 회식만 좇고, 아이와 거리를 두고 사는 이들일까.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재릉초등학교 아빠들이다. 학교 행사가 열리면 대부분은 엄마들 차지이지만, 재릉초 아빠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항변한다. 정말 그런지 확인차(?) 재릉초 아빠들을 만났다.

초등 2학년과 중학생 1학년을 둔 아빠 이진선씨, 5살과 초등 1학년이 있는 김종훈씨, 7살과 초등 2학년 아빠 이지훈씨, 초등 2학년 아빠 최승호씨. 다들 바다를 건너온 아빠들이다.

아이들에게 재미를 안기기 위해 온 이들도 있고, 육아휴직을 받고 제주행을 감행한 아빠도 있다. ‘일’보다는 ‘가정’을 위해 과감하게 퇴사하고 재릉초 학부모가 된 아빠도 있다. 공통점을 찾자면 ‘아이와 가정의 행복’이다. <조선왕조실록>는 제주도를 ‘해외’라고도 했는데, 이들은 정말이지 ‘바다 너머’로 행복을 찾아왔다.

“공부보다는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어요. 경험을 해야 자기 진로도 찾을 수 있고요. 정말 재밌는 게 뭘까, 그런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여기로 왔죠.”(아빠 이진선)

“육아휴직을 쓰고 내려왔어요. 아이가 둘인데, 한명당 1년씩 쓸 수 있거든요. 아들이다 보니 에너지 발산도 많고, 어릴 때 아이들에게 경험을 시켜주자고 해서 여기를 택했어요.”(아빠 김종훈)

“육지에 있으면서 주말도 쉬지 않고 업무를 하다 보니 애들이 큰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을 한번도 워터파크와 같은 곳에 데려가 본 적이 없는 거예요. 휴식도 필요했고, 그래서 여기에 왔어요.”(아빠 이지훈)

“맞벌이를 하다 보니 부모님의 지원이 없으면 거의 불가한 상황이었어요. 어머니는 아프시고, 장인·장모님은 모두 일을 하세요. 우리 부부는 건설회사를 다니는데, 회사에 매인 시간이 길어요. 애들이 한창 손을 필요로 하는데 선택을 했죠. 제가 그만두는 걸로.”(아빠 최승호)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과감하게 제주행을 선택한 재릉초 아빠들. 왼쪽부터 최승호, 이진선 김종훈, 이지훈씨. 미디어제주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과감하게 제주행을 선택한 재릉초 아빠들. 왼쪽부터 최승호, 이진선, 김종훈, 이지훈씨. ⓒ미디어제주

사정은 다르지만 선택은 하나였다. ‘가정의 행복’이었다.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키우려면 부모가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을 제주로 이끌었다. 무모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아이들에겐 커서도 말할 게 생겼다. “아빠의 선택은 너희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고.

풍광이 좋아서 제주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주의 교육환경 때문에 선택하는 젊은 부모들이 많다. 특히 제주의 초등학교는 인기만점이다. 재릉초 역시 그렇다. 4명의 아빠들은 왜 재릉초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빠들에게 재릉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이유를 물었더니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아름다운 해변과 가까운 학교, 긴 진입로를 따라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이 있다는 사실. ‘제주형 자율학교’라는 특성화 위주의 프로그램, 아빠들 중에는 우연히 학교로 발길을 옮겨서 재릉초를 만나서 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진선씨는 중학생인 큰 애가 어릴 때부터 모든 활동을 가족과 함께했다. ‘아빠는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평소에 일깨워줬고, 지금도 둘째를 재릉초에 보내며 실천하고 있다.

“아빠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게 중요하겠죠.”

육지에서도 출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하지 않았던 김종훈씨. 그럼에도 그는 무려 2년의 육아휴직을 감행했다.

“퇴근 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아빠가 행사에 오지 않으면 왜 안 오냐고 하곤 해요.”

적극적인 아빠의 참여가 있는 가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다. 이지훈씨도 제주에 오기 전에는 그랬다. 아빠는 주말에만 잠시 얼굴을 비치는 사람이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제주로 더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랑 공감대가 되지 않으니, 아이랑 나누는 대화가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잖아요. 거리가 더 멀어질 것 같은 거예요. (제주에 와서는)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데, 처음엔 아이가 어색해했지만 이젠 아빠가 학교에 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죠.”

건설회사에 다니던 최승호씨는 아침 7시까지 출근했다. 그렇다면 퇴근은 빨라야 할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는 퇴근시간은 명확하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아이의 입에서는 “저리,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때문에 과감하게 선택한 제주행은 가족의 행복을 위한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왜 아빠의 ‘무관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일까. 그걸 거부하는 아빠들. 재릉초 아빠들은 아이들과 친구이길 원한다. 고민을 받아주는 아빠, 목욕도 함께하는 아빠, 퇴사까지 하면서 아이를 지키고자 한 아빠. 다들 한결같이 아이를 생각하고, 가정의 행복을 원한다. 어쩌면 아빠 최승호씨의 다음 이야기가 모든 걸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많은 걸 바라진 않아요. 사랑과 관심을 자식에게 줄 수 있으면 해요. 롤모델로서 역할을 한다면 허투루 산 건 아닐테죠. 묵묵히 내 인생을 살면서 자식한테 귀감이 되는, 그런 걸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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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2022-12-08 21:41:19
너무 훌륭한 아빠들이네요. 멋진 제주에서의 추억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