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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관한 생각
음식에 관한 생각
  • 홍기확
  • 승인 2023.08.08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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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43>

의식주(衣食住). 일본은 입고 먹고 자는 순서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역시 대한제국 시대부터 ‘의식주’로 썼다고 하니, 아마 일본의 영향을 받은 듯싶다. 이와 달리 중국과 북한, 서구문명은 모두 ‘식의주(食衣住, food,clothing and shelter)’로 순서를 표현한다. 언어의 사회성을 본다면, 1대 100으로 먹는 것이 제일이라고 지구인들은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표선면에서 오랜 기간 멸치국수 하나만 파는 ‘춘자국수’를 찾았다. 간판도 허름하여 바로 앞에서 찾지 못해 두리번 거리긴 했다. 아마도 사장님의 이름은 일본식 이름인 춘자(春子)일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계시는 80대의 할머니가 있었다. 정정한다. 단연코 사장님의 이름은 춘자다.

멸치국수 단일 메뉴지만 나름 배려하여 보통과 곱빼기가 있다. 나는 곱빼기, 아내는 보통을 주문했다. 살짝 굽은 등의 할머니는 약간의 미련이 있는지 전국노래자랑을 힐끔 돌아본다. 그러곤 미리 삶아진 퉁퉁 불은 면을 대충 양푼에 담고 나름 멸치국물로 토렴을 한다. 전국노래자랑, 굽은 등, 토렴, 그리고 단 1분 만에 나온 멸치국수 두 그릇. 그리고 반찬은 할머니의 세월만큼 쉬어버린 시큼한 깍두기 한 접시다.

할머니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어머니와 아버지도 없는 거니까 생명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 된다. 물론 돌아가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하지만, 있다. 할머니가 없는 손자손녀는 지구에 없었고, 지금도 없다. 발끈하는 것 같지만 어떤 할머니를 보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들이 생각나서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음식점의 분위기와 음식에 매료되어 생각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국물 요리는 국물을 먼저 먹어보는 편이다. 춘자할머니 국수의 국물을 떠먹어보았다. 최고의 평범함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멸치국수는 어떤 맛인가요?’라고 물으면, ‘이 맛이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맛이었다. 면을 먹어보았다. 역시 지극히 평범했다. 꾸밈이 없었다. 내가 철칙으로 생각하는 글귀가 떠올랐다.

‘특별함은 평범함을 쌓아 올린 것이다.’

특별한 국수를 먹었다. 플라톤은 신의 세계, 즉 이데아(idea)에는 완벽하고 유일한 사물과 관념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령 완벽하게 생긴 의자, 표준적인 토마토, 순수한 이성, 진리 등이다. 나는 국수를 먹으며 이 국수야말로 신의 세계에 있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국수라 생각했다.

국수를 먹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생각여행을 하며 든 생각은, 의식주보다는 식의주(食衣住)가 옳다는 것. 그리고 춘자국수 사장님 이름은 춘자라는 것. 내 할머니들의 요리는 맛이 있진 않았지만, 평범했기 때문에 기억난다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쩌면 그 평범한 추억의 맛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음식을 맛보며 헤매고 있다는 것.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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