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7-12 17:58 (금)
지금까지 만들어간 나이테를 세며
지금까지 만들어간 나이테를 세며
  • 홍기확
  • 승인 2023.08.28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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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46>

서귀포시 자연휴양림에 갔을 때다.

태풍으로 쓰러지거나 수명이 다해 베여 밑동만 남은 고목들이 있었다. 그 고목의 나이테를 세어 보았다.

나이테의 간격은 고르지 않았다. 어느 해는 급성장을 했는지 간격이 넓었고, 어느 해는 숨죽여 버텼는지 간격이 좁았다. 그래서 같은 굵기의 나무라도 그들의 나이는 모두 달랐다.

50대 이상의 지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드니 사는 게 더 재미있어졌어.’ 그만큼 나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그들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반면 직장이나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드니 세월이 너무 빨라.’ 그만큼 나는 속도전에 돌입한 사람과도 만나고 있다. 그들은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나이테를 세어 보고 싶다.

내 나이테를 세어 보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테를 세어 볼 수는 없다. 그들이 죽기 전에는 평가할 수 없는, 세어 볼 수 없는 숨어 있는 진정한 나이니까.

하지만 내 나이테는 세어 볼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는 지금의 내 나이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도달할 내 나이테의 추정도 가능하다. 그것은 내 미래의 삶을 그려보면 되니까.

초등학생 때 내 별명은 할아범이었다. 머리카락이 반백이 되어 그랬기도 하지만, 한문 고전 따위를 읽는 모습에 그랬을 터다. 중고등학교 때는 별명이 또라이였다. 공부는 안 하고 소설, 시를 쓰거나 신문을 읽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사회와 친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마찬가지였다.

서른한 살에 5번째 직장에 입사하며 은퇴계획을 세우고, 마흔다섯 살에 은퇴 준비를 마쳤다. 서른한 살의 목표는 당장 퇴직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실력과 재력을 갖추고, 내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게 15년간 준비로 나는 밥벌이를 위한 공부를 모두 마쳤고, 집까지 지었다. 아이의 급성장기처럼 40대 중반까지 매해 내 나이테의 간격은 아주 넓었다.

세상에는 나쁜 일도 많다. 나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좋은 일과 좋은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나이가 드니 사는 게 더 재미있어졌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나이가 드니 세월이 너무 빨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세월의 맛, 나이 드는 맛, 나이테를 세는 맛,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월이 가는 것이 아쉽지 않고, 나이 드는 것이 불편치 않고, 나이테가 하나 늘어 간 것에 기뻐하는 그런 사람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치고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나이테의 개수가 아닌, 내가 만든 나이테의 간격을 세상에 자랑하고 싶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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