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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전 20대 청춘을 바친 문상길‧손선호를 기억하라”
“75년 전 20대 청춘을 바친 문상길‧손선호를 기억하라”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9.23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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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4.3 항쟁 제75주년 문상길 중위‧손선호 하사 진혼제 봉행
“지배자 눈에는 반역의 무리, 4.3 당시 도민들에게는 ‘의로운 죽음’”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박진경 제9연대장을 사살한 뒤 총살형에 처해진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진혼제가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처형 장소 추정지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박진경 제9연대장을 사살한 뒤 총살형에 처해진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진혼제가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처형 장소 추정지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75년 전 오늘, 1948년 9월 23일. 이 날은 제주4.3 당시 제11연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던 박진경 대령을 처단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가 총살형에 처해진 날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통일청년회,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서 ‘4.3항쟁 제75주년 문상길 중위‧손선호 하사 진혼제’를 개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혼제가 열린 이 곳은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가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4.3기념사업위와 도민연대는 당시 ‘총살 목격기’가 게재된 신문 보도(평화일보, 1948년 9월 25일자)에 ‘서울 북쪽 수색 동방 5리 지점’이라고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수 차례 현장답사 끝에 이 일대에서 문 중위와 손 하사에 대한 총살형이 집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강호진 4.3기념사업위 위원장은 “현지 주민들을 직접 만나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한국전쟁 이전부터 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그 곳에 제1여단이 주둔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시 처형 장소가 사진 기록으로 남겨진 모습이 이 곳의 인근 지형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대로부터 2㎞ 가량 떨어진 이 곳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진혼제는 식전 제례에 이어 국민의례와 묵념, 약력 및 경과 보고와 추모시 및 총살 목격기 낭독, 주제사와 추도사, 헌화‧분향, ‘잠들지 않는 남도’ 제창 등 순으로 진행됐다.

식전 제례의 제관은 오창훈 제주4.3도민연대 운영위원이 초헌관을, 강미경 제주통일청년회 사무국장이 아헌관, 박진우 재경 제주4.3희생자 유족청년회장이 종헌관을 맡았다.

강호진 4.3기념사업위 위원장은 주제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를 비롯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고 진혼제의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강 위원장은 “여전히 국립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박진경이 고향에서는 ‘창군 영웅’으로 칭송을 받고 있고, 그의 비석은 제주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면서 4.3단체들과 도민의 힘으로 박진경의 잘못된 행적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음에도 행정이 면피성 답변만 내놓으면서 방관하고 있는 부분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이어 그는 “지배자들의 눈에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여전히 상관을 총탄으로 사살한 반역의 무리일 뿐”이라면서 반면 “민중의 눈으로, 제주4.3 당시 대다수 도민들의 마음으로 보면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등의 행동은 의로운 죽음”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더 이상 20대 청춘을 내던진 그들의 굳은 결심을 잊지 말자”며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 흔적을 찾고 전파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시로, 누군가는 노래로, 누군가는 연구로, 누군가는 행동으로 이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할 시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처형 당시 문상길 중위는 23세, 손선호 하사는 20세였다고 한다.

4.3이라는 비극을 막기 위해 당시 제9연대장이었던 김익렬 중령이 무장대와 협상에 나섰다가 강경 진압을 주장한 미 군정에 의해 좌절된 후 부임한 박진경 연대장은 부임 한 달여 만에 무려 6000여 명에 달하는 포로를 붙잡는 등 4.3 당시 무자비한 탄압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이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가 이날 진혼제를 찾은 4.3범국민위 관계자들의 문상길 중위와 손상길 하사의 행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가 이날 진혼제를 찾은 4.3범국민위 관계자들의 문상길 중위와 손상길 하사의 행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미디어제주>와 만난 자리에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총살형이 집행된 시기가 여순항쟁 직후 대대적인 숙군 작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는 데 주목했다.

양 대표는 “문상길 중위의 경우 그동안 광주 출신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경북 안동 출신으로, 임청각으로 널리 알려진 안동 지역의 독립투사 중 대표적인 이상용 국무령 집안과 사돈을 맺은 집안”이라며 “직권재심과 피해자‧유족에 대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의로운 이들의 행적을 재조명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해선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날 진혼제에서는 문 중위와 손 하사 외에도 당시 박진경 대령 처단에 가담했다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양회천 이등상사, 강승규 일등중사, 신상우 일등중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배경용 하사, 이경우 하사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됐다.

다음은 문상길 중위의 최후 법정진술 일부 내용이다.

…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 이 법정의 성격상 당연히 총살형이 선고될 것이며

우리는 그 선고에 마음으로 복종하며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여 주시기 바란다.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박진경 제9연대장을 사살한 뒤 총살형에 처해진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진혼제가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처형 장소 추정지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박진경 제9연대장을 사살한 뒤 총살형에 처해진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진혼제가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처형 장소 추정지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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