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그림만 동심인줄 알았는데 글도 마찬가지이군요”
“그림만 동심인줄 알았는데 글도 마찬가지이군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11.21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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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그리는 화가 김품창 첫 에세이

제주의 삶 담은 ‘제주를 품은 창’ 펴내

“자연·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그림 그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동심을 자극한다. 그의 그림은 늘 그렇다. 알고 보니 그림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글도 그랬다. 그가 누구인지 소개하련다. 그러려면 오늘이 아닌, 하루 전날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부재중전화 한 통화. 어제(20일)다. 김품창이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무슨 일일까?

“책이 나왔어요.”

미디어제주 인근에 왔다가, 아니 책을 전해주려고 일부러 여기로 발길을 잡은 그였다. 직접 사인까지 해주며 건넨 책은 ≪제주를 품은 창-김품창 에세이≫다. 책 제목에 김품창이 읽힌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데, 그가 왜 글로 말하려는지 궁금했다.

글을 잘 써달라며 받은 책이다. 아울러 톡으로 보도자료도 받았다. 기자간담회도 마련했단다. 아쉽게도 기자간담회 자리엔 갈 여유가 없다. 다른 기자들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텐데, 거기에 갈 수 없게 되니 답을 해줘야 할 의무가 생겼다.

서평이라고 하긴 그렇고, 출간된 책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는 요청에 대한 나의 답은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보도자료에 전적으로 의지하거나, 보도자료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고 책을 다 읽고 나서 개인적인 생각을 담는 경우다. 전자가 흔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만나면 후자를 택한다. ≪제주를 품은 창≫은 후자다.

책을 펼쳤다. 밤늦은 시간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읽다 보니 어느새 내 눈은 ‘맺는 글’에 와닿았다. ‘금세’라고 해야 할지, ‘눈깜짝’이라고 해야 할지, 단숨에 읽혔다. 책에 담긴 김품창은 ‘천상 화가’였다. 천상이란 뭔가? 하늘에서 점찍어줬다는 뜻이다. 화가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그에게 있었다. 강원도 정선군의 탄광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하얀 우유 맛이 궁금해 미술대회에 출전했다는데, 그건 화가에겐 이유가 될 수 없다. ‘우유 맛’을 맛보게 한 하늘의 뜻이 있지 않고서야 화가 김품창을 논할 수 없다. 제주에 내려와서 붓을 꺾기도 했다지만, 화가의 창작욕을 막을 순 없었다. 천상 화가였으니.

≪제주를 품은 창≫은 마치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김품창의 그림은 때가 없는 ‘무구(無垢)’다. 욕심도 달아나게 만든다. 책이 그걸 말한다. 순진무구한 김품창을 말한다.

강원도 산골을 거쳐 경북 영주, 그러다 서울에서 창작생활에 몰입하던 화가 김품창. 제주에 가족과 함께 내려온 건 2001년이다. 말도 이상한 동네였고, 자신들을 향해 ‘육지사람’ 혹은 ‘육짓것’이라는 부르는 제주사람의 틈에 끼게 된다. 살다 보니 햇수로 23년. ≪제주를 품은 창≫은 어느새 제주사람이 되어버린 자신과 그 가족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좀 다르다면? 제주사람보다 더 제주를 사랑한다는 점일까?

김품창이라는 사람은 정말 이상하다. 사 온 고둥(보말)을 먹지 못하고 키우다니. 그는 책에서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부두에서 사 온 고둥이 살아 숨을 쉬자 먹지 않고, 키우고야 만다. 바닷물을 부어가며 부지런히 키우다가 고둥을 고향인 바다로 돌려보냈다.

고둥만 그랬나? 아니다. 문어를 사야 할 때는 죽은 문어를 사는 것도 모자라, 살아 있는 새끼 문어도 함께 산다. 새끼 문어는 집으로 오는 길에 풀어준다. 죽은 문어를 산 이유는 삶겨 죽어야 할 문어의 고통이 떠오른 때문이다. 책에 실린 그의 말을 들어보자.

“문어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중섭 선생님이 게를 많이 그린 이유도 나와 비슷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게를 많이 잡아먹어 게한테 미안해서…. 내 그림에도 그래서 문어가 나온다. 문어는 자연스럽게 내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강태공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의 첫 낚시는 마지막 낚시였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면 간혹 멀미가 나는 모양이다. 멀미를 달래러 주변에 있는 대나무로 낚싯대를 만들어 바다로 향했다. 고망낚시를 하며 우럭을 낚았다. 그러다 낚싯바늘에 엉덩이를 찔리며 물고기의 고통을 알고야 말았다. 낚시를 접어야 했다. 고둥도 풀어주고, 문어도 풀어주고, 첫 낚시는 마지막 낚시라는 그의 경험은, 그를 이상하게 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이해된다. 그의 그림과 행동은 닮았다. 때가 타지 않는 그런 무구한 행동이 없었더라면 동심의 세계에서나 만남직한 그의 그림은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는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좋은 그림’을 그린다. ‘잘 그린 그림’은 기술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제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그림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잘 그린 그림’을 바탕에 두고, 작품 위에 이상을 펼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일필로 빨리 그린 그림보다 붓 터치가 쌓여 둔탁하게 느껴지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런 그림은 푸근하고 질리지 않는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련된 그림보다 투박하고 좀 서툰 그림에서 인간미를 더 느낀다.”

화가 김품창의 그림은 동심을 담는다. 그의 글도 마찬가지다.
화가 김품창의 그림은 동심을 담는다. 그의 글도 마찬가지다.

제주살이는 어려웠다. 집에 쌀 한 톨 없던 기억도 있다. 제주에 정착한지 5년 만에 연 개인전은 생애 첫 개인전이었고, 제주를 그리는 작가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렇게 제주를 그리는 작가로 산지도 꽤 오랜 시간이다. 그의 작품은 가고픈, 상상하고픈 땅이 나온다. 고래가 나오고 거북도 있고, 말도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에게 사람처럼 세상을 보는 ‘눈’을 안긴다. 동화의 한 장면이다. ‘눈’을 그리는 이유는 억울하게 죽어간 가로수의 아픈 기억이 있어서다. 책은 그가 말하는 ‘함께’의 가치가 들어 있다.

“수많은 생명체와 자연과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들 중 하나의 개체라도 사라지면 모든 생태계에 위협이 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올바른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어야 상생할 수 있다.”

≪제주를 품은 창≫은 김품창이라는 화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제주는 어떠할까. 여기서는 다 말하지 못했다. 다 쓰지 못한 이야기는 책에 담겨 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제주에 내려오게 된 이야기는 물론, 주변의 인간관계도 만나게 된다. 더 궁금하다면 책을 더 들여다보길 권한다. ≪제주를 품은 창≫은 ‘필무렵’에서 펴냈다. 책 곳곳에 그림도 있어서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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