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1208억원 규모의 새해 제주도 살림살이가 최종 확정됐다.
지난해처럼 도 집행부와 도의회가 대립각을 세운 끝에 ‘예산전쟁’으로 비화돼 대규모 삭감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피했지만, 예산 계수조정을 둘러싼 잡음은 여전했다.
결국 지난 14일 오후 열린 제6차 본회의에서 원희룡 지사는 의회에서 삭감된 후 신규 또는 증액 편성된 264억원 중 13억7800만원에 대해서는 끝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 지사는 부동의 사유로 “우선 읍면동의 인구, 면적 등을 고려해 산정하는 환경정비 관련 사업 등 기준경비는 편성기준에 따라 예산이 반영됐음에도 증액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배제했다”고 밝혔다.
또 공동주택 시설개선사업에 대해서는 “예산편성지침과 사무위임조례에 따라 행정시 사무에 해당한다”면서 형평성 차원에서 행정시 공모사업으로 조건부 동의했음에도 충족되지 않은 경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도와 행정시 예산에 편성된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이나 읍면동간 형평성이 결여되는 사업이 증액된 경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주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산악인 고상돈을 위한 기념관 건립 실태조사 사업비 7000만원이 ‘부동의’ 사업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분에 대해 제주도는 정부 지원방안이 협의되고 있어 시급한 현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부동의 사유로 들었다.
故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은 1977년. 지금으로부터 벌써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난 2009년 ‘고상돈 30주기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에서 고상돈기념관 건립 필요성이 제기된 후 꾸준히 고상돈기념관 건립을 위한 건의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기념관 건립을 위한 준비 작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9년 당시 국회에서 열린 전시회 제목이 ‘잊혀진 영웅 고상돈’이었다. 이에 당시 몇몇 산악인이 “왜 잊혀진 영웅이냐”고 따졌지만 선배 언론인이자 사진가인 모 선배는 “밖에 나가서 혹시 고상돈을 아냐고 물어보라”면서 “‘고상돈’이라는 이름이 용도폐기된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라고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고상돈은 오늘날 산악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진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는, 지금은 잊혀진 인물입니다”
지난달 25일 제주도의회 정례회 도정질문에서 고충홍 의원(새누리당)이 원희룡 지사에게 직접 故 고상돈을 ‘잊혀진 인물’이 되지 않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전한 말이다.
대한산악연맹이 9월 15일을 ‘산악인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갖고 있고 지난 2010년 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삼거링서부터 옛 탐라대사거리까지 18㎞ 구간을 ‘고상돈로’로 명명해놓고 매해 11월 고상돈로 걷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물은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의 수장고에서 빛을 보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원희룡 지사에게 다시 묻고 싶다. 제주 출신 산악인으로서, 한국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친 고상돈을 기리는 일이라면 정부에 떠넘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주도가 먼저 나서야 할 일 아닌가.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