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상처난 빌레못에 새 살아, 돋아라"
"상처난 빌레못에 새 살아, 돋아라"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4.07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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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예총, 7일 빌레못굴서 4.3해원상생굿 개최

7일 오전,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꽃향기를 따라 찾아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굴.

따뜻한 햇살, 어두운 땅속을 뚫고 봉긋 봉긋 올라온 연두빛 새싹, '꼬물꼬물' 고사리...계절적으로 봄인 것은 틀림이 없었지만 아직까지 '빌레못굴'만은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봄이 찾아들지를 못했다.

1970년대 초반 유해 4구가 동굴 탐사대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상에 4.3을 알리는 계기가 됐던 어음2리 706번지에 위치한 빌레못굴은 어음과 납읍, 장전리에서 온 주민 30여명이 한 달 동안 굴속 공동체를 이루며 피신하고 있다가 1949년 1월 16일 애월지역 군.경.민합동 토벌대에 의해 23명이 무참하게 총살당한 현장이다.

7개월도 채 되지 않은 남자아이가 돌에 메쳐져 죽었을 정도로 잔인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이 빌레못굴에서 총달을 당한 1년 뒤 시신을 수습했던 진운경씨(72.납읍리)는 "시신 25구가 흙에 덮여 있었고 흙을 걷으니 할아버지도, 숙모도 있었고 숙모 옆에는 7개월이었던 아기가 품에 있었다"며 "할아버지, 할머니, 외숙모는 수습을 해오고 아기는 그 곳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아기가 순경이 돌에 쳐 죽였다는 아이"라면서 "숙모가 아기를 안고 굴에서 나오는데 입구가 좁으니까 그 순경에게 아기를 받아달라고 했는데...아기를 받자마자 돌에 쳐 죽였다는 것"이라고 당시 들은 상황을 설명했다.

"어이구, 어이구, 헉헉"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애처롭게 어머니를 부르는 통곡의 소리가 빌레못굴 일대에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밧줄에 묶인 채 가시덤불을 헤치며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가족을 찾는 한 여인네의 얼굴은 눈물로 뒤엉키고 목놓아 운 탓인지 목소리는 쉬고, 혼절 직전이다.

별안간 나타난 토벌대가 그녀의 집, 가족, 살아가는 이유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목이 마르오. 물 좀 주소, 배가 고프오, 밥 좀 주소"

놀이패 한라산의 '몸굿'은 가수 최상돈씨의 서글픈 노래가 더해져 감정은 더 복받쳐 보는 이들도 콧끝이 찡해오고 눈에 고인 '그렁그렁' 한 눈물은 이내 곧 뺨을 타고 흘렀다.

이날 '몸굿'은 연출되지 않은 '날 것'의 미학이었다. 그저 4.3당시 죽임을 당한 무고한 희생자들과 4.3의 역사를 만났을 뿐이다

7일 오전 10시부터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굴에서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가 주관하고 해원상생굿 기획팀이 기획연출한 빌레못굴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오후 3시까지 진행된 해원상생굿은 죽음으로 내몰린 인간의 영혼과 그 상처를 가슴으로만 묻어간 기억의 치유를 풀고, 버려진 원혼의 찢긴 상처의 연유를 다양한 굿으로 풀어냈다.

한편 해원상생굿은 놀이패 한라산과 가수 최상돈씨가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위무하는 증언극 마당과 강미리 부산대학교 교수의 춤굿, 제주작가회의 강덕환 시인의 '시굿',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의 집전으로 위령굿, 참배분향, 소지사룸 순으로 진행됐다.

 

빌레못굴 희생자 명단(총 27명)

굴속에서 4명 (양재인, 강숙자, 현원학, 현원학 자)/ 굴밖에서 23명 희생

어음리

-김유화 가족: 김유화, 강주인, 세 살 된 아들, 양재인, 여섯 살 된 딸 강수자(5명)

-송제영.강성수 부부

-양신하(현장에서 죽지 않고 군인들에게 끌고 다니다가 총살당함)

-양승진

 

장전리

-강희진 가족: 처 현계출과 여덟 살 된 딸과 여섯 살 된 아들

 

납읍리

-현용승 가족: 현용승.강희부부, 병용옥과 한 살 된 아들, 김정현, 진승희, 양기원

-현원학 가족: 현원학, 박계생, 현규삼, 현규칠, 현규칠의 한 살 된 아들, 양청하

-진관행, 안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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