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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침묵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침묵한 이유는?
  • 문상식 기자
  • 승인 2007.05.27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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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취재파일] 해군기지 문제, 제주도의 선택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함' 또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을 일컫는다. 정부는 지난 2005년 1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선포했다. 선포식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많은 도민들은 이를 계기로 제주의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과 함께 자부심을 갖게됐다. 더 나아가 제주도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평화지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금 해군기지 논란 속에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는 갈등과 반목에 휩싸여 있다. 찬성단체는 '힘을 얻어야 평화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단체들은 '평화는 평화에 의해서만 지켜진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가 일방적으로 해군기지 유치를 일사천리로 진행하면서 '세계평화의 섬' 지정이 단순한 간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가 제주섬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국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제주 군사기지 반대를 촉구하는가 하면, 해군기지 유치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종교계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사제단이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간 해군기지 유치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단식기도를 진행한데 이어 기독교 성직자들도 25일부터 제주 해군기지 철회를 촉구하는 그리스도인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이들은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불국하고 신뢰성과 객관성을 잃은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밀어붙이기식으로 결정한 정부와 제주도 행정당국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 같은 결정은 평화의 섬 제주에 참평화를 깨뜨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간 불신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성토했다.

여기에 최근 평화백배 운동과 평화염원 촛불문화제가 열리면서 평화 열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다. 평화백배를 하며 흘린 땀 한방울과 평화를 염원하는 작은 촛불들이 모여 제주섬에 평화의 기운이 가득 메워졌다.

이들은 군사기지의 실체가 아니라, 평화의 섬 제주가 나아갈 미래가 어떤 것인지 그 구체적이 비전과 플랜을 요구하면서, "세계 평화의 섬 제주야 말로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장 평화로운 세계인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이 100% 맞을런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주를 위해서 옳은 것인지, 또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는 저마다의 논리 속에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책결정 주체인 제주도당국은 민의를 수렴하는데 있어 '일방'이 아니라 '양쪽' 귀를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부르짓음은 제주도당국이 늘상 그래왔다. 냉대하거나 '반대 아닌 반대만 외친다'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더 이상의 '일방'은 안된다. '평화'를 염원하며 해군기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비단 시민단체 뿐만이 아니다. 천주교와 기독교 성직자들도 한결같이 '평화'를 부르짖고 있다. 제주도당국의 '일방적 강행'에 강한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다.

교사와 예술인, 학부모들도 가세하고 있다. 제주도는 정부와의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 서둘러 정책결정을 한 것에 대해 정부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어했을런지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도 속시원하게 답을 주지 않았다.

칭찬받고 싶어서 두번씩이나 큰 소리로 자랑을 했는데, 머쓱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침묵을 하게 된 그 이면에는 어쩌면 해군기지 정책추진방향에는 동의하나, 일방적인 강행추진으로 인해 제주 여론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달갑지 않은 감정의 표현일런지 모른다. 이왕 정책결정을 하려거든 '소리 안나게', 그리고 '깔끔하게' 하든지, 과정과 절차가 미덥지 못하다는 마음 때문에 침묵했을 것이란 뒷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행사 관례상 사전 발언요지를 모두 받아보았고, 답변구상도 했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 침묵한 것을 놓고 단순히 '빠뜨렸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평소 노무현 대통령의 대화 스타일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해군기지 로드맵 일방적 발표, 일방 강행, 도의원까지 폭행하며 강제연행, 여론조사 결과 일방적 발표, 최우선 후보지 결정, 강력 반발, 도의회 초강수 대응, 행정사무조사권 발동, 천주교 사제단 단식기도 돌입, 기독교 성직자 단기도회 시작 등등.

이런 저런 상황을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몰랐을까. 대통령이 해군기지 추진 기조에는 동의했을지는 몰라도, 일련의 절차와 과정에 대해서는 답답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은 아닐까.

지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제주도당국은 더 이상 '자기 위안'이나 '자기 변명'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과정과 절차에 있어 진정 잘못이 없었는지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사상 유례없는 의회와의 냉각기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선택의 몫은 여전히 제주도가 갖고 있다.

<문상식 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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