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5-13 19:55 (목)
“도시는 오랜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져야 한다”
“도시는 오랜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져야 한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4.29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22> 건축가 김정일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지맥건축의 김정일 소장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나는 제주건축가다> 기획을 끝낸다. 그는 제주시에서 태어났으나 자라기는 어머니의 고향인 하천리였다. 그는 초가에서 제주의 깊음을 알았다. 그 때문인지 그가 가장 애착을 두는 장소는 다름 아닌 우리의 옛집이다. 소개한 책은 마치 제주초가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공간예찬>이다.

# 우리집-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간혹 꿈을 꾸며 등장하는 집이 있다. 2층집이다. 나무로 된 그 집은 왜 그렇게 꿈에 많이 등장을 할까. 전생에 살던 집인지는 알 수 없지만, 꿈속의 우리집은 목조로 된 2층집이다. 전생의 시간을 따진다면 그 시점에 우리나라엔 목조로 된 2층집이 없기에, 공간만으로 추적을 해보면 그 집은 다른 나라에 남겨둔 우리집일 수도 있고, 전생이 아닌 미래의 우리집일 수도 있겠다.

‘우리집’이라는 단어는 부르기만 해도 행복하다. 물론 그런 집이 없는 이들에겐 우리집이라고 이름을 꺼내는 게 미안하지만. 그러고 보면 예전 우리들은 우리집을 하나쯤은 다 갖추고 있었다. 부동산 개념이 지금과 달랐고, 당시는 동네 목수가 나서거나 이웃의 품앗이로 건축행위도 이뤄지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력이 있어야 했다.

건축에서 느끼는 행복은 무엇일까. 대가에게 설계를 맡긴 집일까? 물론 아니다. 근대건축의 이상적인 작품으로 여기는 ‘빌라 사보아’는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집과는 다르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그 작품에 우리는 열광하지만 실제 거기에 살아야 했던 사보아의 가족들은 고통이었다. 사보아 가족은 ‘우리집’에서 살았지만 아들인 로제는 집안으로 흘러드는 습기와 물기와 싸우며 폐렴에 걸리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런 우리집은 행복이 아니다. 건축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건축물과 말걸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존 러스킨은 “우리는 건물을 향해 보호해달라고 요구를 하고, 건물은 반대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야 행복해지며, 그게 우리집이다.

예전 우리집인 제주초가. 깊은 어둠이 빛보다 더 강하다. 미디어제주
예전 우리집인 제주초가. 깊은 어둠이 빛보다 더 강렬하다. ⓒ미디어제주

그런 면에서 옛집은 ‘우리집’이다. 낮은 우리집은 바람을 이기고 더위도 이겼다. 바람이 순하게 타고 가라며 지붕도 ‘우뚝’이 아닌 ‘봉긋’이었다. 키가 큰 사람에겐 낮은 집이 불만일 수도 있었겠지만, 낮게 땅에 붙어야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쉬웠다. 그게 우리집이었다.

우리집은 겹집이었다. 우리나라 초가는 북쪽을 빼면 대부분은 홑집인데, 제주도의 우리집은 아니었다. 구들과 고팡이 겹치거나 작은구들과 정지가 겹으로 깊은 집을 이루기도 한다. 우리집은 육지부의 초가와 달리 정지에서 밥도 해 먹는데, 검은 그을음이 초가 곳곳에 스며든다. 그럴 때마다 집은 더욱 어두워지고, 그에 상응하는 가느다란 빛은 더욱 눈에 부각된다. 그게 음예가 아니고 뭔가. 어둠에 깔린 빛, 육지부 초가에서 만나지 못하는 우리집만의 멋이 들어 있다.

그렇게 살던 우리집은 이젠 없다. 우리집은 포클레인으로 자신이 허물어지는 걸 봤다. 그걸 보며 아파했으나 더한 아픔은 자신이 허물어진 뒤 세워지는 또다른 개발이었다. 초가를 닮은 우리집은 더 이상 만들어 쓰지 않는다. 전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과거에서 이어지던 걸 현재에도 활용해야 전통이라 불러준다. 초가를 얹었던 우리집은 이젠 전통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박제화된 ‘유물’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그렇다고 우리집을 ‘과거’로 치부하지 말자. 다행히 그걸 살려서 잘 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집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길 수백년간 바라왔는데, 이제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대담] 건축가 김정일을 만나다

지맥건축 김정일 대표는 제주시내에서 태어났다가 아버지의 고향을 거쳐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기억은 늘 품에 있다. 그 기억은 자신도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지탱해주고 있고, 자신이 펼쳐내려는 이상적인 건축관과도 닮았다. 아직은 그 기억을 구현하지 못했다지만, 언젠가는 그가 늘 떠올려보는 기억의 건축은 사람이 살아가는 행복의 건축이 될지 모른다.

 

일본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공간예찬>을 선정했는데, 이유를 듣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건축사사무소에 있던 선배가 그 책을 사줬다. 읽어보라면서. 우리 때는 안도 다다오가 뜰 때였고, 해외 건축가를 맹목적으로 따를 때였다. 책을 받고 읽어보니 아차싶었다. 정말 충격을 받았다.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아차라고도 표현했는데, ‘아차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까.

아차는 내가 왜 우리나라 걸 못보고 있지? 이런 느낌이다. ‘음예공간이라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미국은 음예번역을 섀도우라로 하는데, 음예는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다. 서양에는 없는 뭔가 동양적인 사고이다. <음예공간예찬>은 계속 가지고 다니며 읽고 있다.

 

책 번역에 참여한 건축가 조성룡이나 조인숙은 전통 한옥을 보며 음예공간을 느낀다는데, 그런 공간은 우리나라 전통 한옥보다는 제주의 집이 맞아 보인다. 초가는 겹집이어서 더 깊다.

아무래도 제주도 집이 음예공간과 어울린다. 기존 한옥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더 충격을 받았다. 어릴 때 살았던 초가집은 어슴푸레한 빛이 있었다. 부엌 바닥은 까만 흙이고, 거기 앉아 있으면 조그만 창을 만나는데, 그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롱샹성당의 빛은 저리 가라다.

 

정지의 덧문을 통해 살짝 나오는 빛.

아주 가느다란 빛. 빛은 어둠에 있을 때가 더 강렬하다.

 

초가는 낮고 벽도 시커멓다. 제주초가는 육지와 달리 밥도 정지에서 하다 보니 검은 기운들이 초가 전체를 덮고, 음예공간을 만든다.

그렇다. 초가에 살지 않았으면 모른다. 많이 없어져서 아쉽긴 하다. 요즘 신축을 하지 말고 다시 쓰자는 말을 많이 한다. 도시재생이라고도 하는데, 뭔가를 살린다는 의미보다는 다시 쓰는 것이다. 책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대에 읽어보면 딱 좋다.

 

책을 보면 아름다움을 물체와 물체가 만드는 명암에 있다고 나온다. 아무래도 작가가 쓴 글이어서 다르긴 하다. 옛날 건축은 풍토를 고려했는데, 요즘은 그런 풍토를 따지지 않고 짓는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어디나 똑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축을 부동산으로 바라보면서 서울이나 제주나 똑같아지고 있다. 그걸 막을 수 있지는 않다. 건축가들이라면 주변을 보고, 지역에 맞는 건축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분절을 좋아한다. 제주시 화북동에 조그만 어린이집을 설계한 게 있다. 골목에 있는 어린이집인데 분절했다. 공동주택은 편리를 위주로 하고 있고, 불특정 다수에게 팔아야 한다는 부동산 개념 때문에 평면이 비슷해진다.

 

그런 곳에 살아본 적이 없다. 공간의 변화가 없는 곳인데, 사람들은 선호를 하고 있다. 공간이 달라야 그게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그래도 비싸다. 우리나라 공기관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예전 주공에서 표준주택 현상설계를 한 적이 있는데, 파격적인 안이 당선됐다. 실현을 시키지는 못했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다르지만 그들이 사는 공간은 같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브랜드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옷을 입거나 가방을 메면서 나는 브랜드로 산다를 보여준다. 아파트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 사람이 집을 너무 많이 가져서 문제이다.

 

제주도도 몇 년 사이에 실거주 개념의 부동산 개념이 바뀌었다. 투기와 투자요소가 돼버렸다. 아파트의 삶도 있지만, 개인주택의 삶도 있다. 개인주택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을텐데.

아파트는 편하다. 고령화되고 바쁜 젊은층이 그런 공동주택이 맞을 듯하다. 나머지 중장년층들은 아파트가 아닌 다른 삶이 맞을 수도 있다. 공동주거는 방 3개를 기본으로 하는데, 조금만 슬림하게 한다면 더 많이 지을 수 있고, 주거문제도 해결되리라 본다.

 

그런데 아파트 평수는 더 커진다.

점점 그렇다. 실제로 쓰는 방은 많지 않은데, 결국은 허세도 있고, 브랜드도 있다.

 

원래 공동주택은 커뮤니티 공간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아파트를 가지는 목적이 자기만의 공간이다. 원룸도 자기만의 공간이 중요하다. 공동으로 쓰는 셰어하우스 개념도 있겠지만.

예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살 때 셰어하우스 개념을 맛봤다. 방은 각자였고 주방과 거실, 화장실은 같이 썼다. 당시 삶은 좋지 않았다. 도떼기시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큰방을 썼던 사람이 예전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분이다. 그분이 다들 모이라고 했고, 개개인이 얼마를 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쌀 공동구매를 했다. 밥이 없는 걸 본 사람이 밥을 하는 식이었다. 지금의 셰어하우스 개념이다. 그런 공간이라면 집이 클 필요는 없다. 대학생들은 충분히 살 수 있다.

 

우리 어릴 때는 화장실 하나로 여러 세대가 썼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

공동체의 가치, 우리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남을 눌러야 사는 세상이며, 그런 게 강해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핵심은 공동체에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은 대학생들이 얘기하는 것과 다르다. 그들은 공평을 말하는데, 그건 공정과 다르다. 많이 벌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모두 다 똑같은 공평이 아니라, 가진 자들이 내놓는 게 실제로는 정의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잘 나서 벌 수도 있지만 사회가 벌게 해주는 것이다. 사회가 벌게 해주기에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자기가 잘 나서 번다고들 한다.

 

그게 극단주의로 나타나는 게 능력주의다. 요즘은 부모를 잘 만나는 게 능력주의다.

사회가 빨리 변하면서 의식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의식은 천천히 바뀌고 있다.

 

건축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사회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 현상도 얘기해야 한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건축도 너무 많이 생산을 하면서 후유증이 오고 있다.

건축가 김정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도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쌓인 적층되는 도시를 강조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건축가 김정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도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쌓인 적층되는 도시를 강조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똑같은 형태의 건축물이 등장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다. 건축의 주인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자본이 건축의 주인이다. 뭔가를 생산해야만 지탱되는 그런 사회가 됐다. 그래서 계속 짓는다. 정부가 바뀌면 경기부양 1순위는 건설이다. 도로를 넓히고 말도 안되는 도시계획을 하고, 아파트를 짓는다. 그러니 더 황폐화된다.

 

도시는 어떤 존재인가.

도시는 사람이 만든다. 사람이 오랜 시간 만드는 게 도시이다. 요즘은 도시를 하루아침에 만든다. 그러니 사람은 없고 아무 것도 적층이 되지 않는 도시가 된다. 사람이 오랫동안 만든 도시는 정감이 있고 사람이 사는 것 같고, 아이들도 뛰어논다. 건물도 각각 다르고, 오랜 시간 적층이 되어서 결코 낯설지 않다. 푸근하다.

 

도시계획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좀 더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한다.

도시를 너무 크게 설계하지 말고 줄여서 하면 어떨까. 인구도 줄어들텐데,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가면서 도시를 만들면 더 안전한 도시가 되고, 그 도시를 사람이 만들어간다. 도시계획은 키우지 말고 스케일을 줄일 일이다.

 

도시계획을 격자, 그러니까 그리드로 만드는데 최근 한창 진행중인 화북상업지구도 격자이다. 매번 지나가며 볼 때마다 달라진다. 울퉁불퉁하던 지형은 사라지고 있다. 땅의 모양을 보지 않고, 여전히 밀어버리고 있다.

앞으로 그런 도시계획은 하지 말아야 한다. 2공항이 들어올지 안들어올지 모르겠지만 제2공항 배후도시를 만든다면 그렇게 될테다. 연동을 보더라도 신시가지와 처음에 조성된 신제주는 다르다.

제주돌을 썼다고 제주는 아니다. 제주성(濟州性)엔 사람이 있다. 역사는 사람이 있기에 쓰였다. 경관기본계획을 보면 서사적 풍경이라는 말을 쓴다. 그 말이 와닿는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은 생태와 자연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의식을 바꾸는 문화운동이 있었으면 한다.

 

이왕 지역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역성을 정리해보자.

지역성, 더 위로 가면 한국성이다. 제주에서 논의가 된 것도 20년이다. 지금은 그걸 바탕으로 제주성의 다른 면을 봐야 한다. 그 당시엔 전통 초가니 재료니, 그런 걸 봤다면 앞으로는 사람을 담고, 제주 역사가 담긴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제주 건축가라면 제주성을 우선 갖는다. 제주에 살아온 건축가들의 의식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음예예찬처럼, 제주에 살았던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제주성은 거창하지 않다. 난 제주 돌을 쓰지 않는다. 그 돌은 아깝다. 놔둬야 될 것 같다. 제주 돌을 너무 많이 캔다.

 

제주 돌을 적당히 쓰면 좋겠는데, 새로 짓는 건물을 보면 모두 겹담으로 튼튼하게 쌓는다. 제주 돌을 많이 쓰거니와 겹담은 풍치도 덜하다. 제주 담은 홑담일 때 더 풍치가 있다.

겹담은 마치 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겹담은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틈도 없다. 홑담은 그게 아니다. 홑담으로 쌓으면 바람도 잘 통한다. 혼자서 개보수도 할 수 있다. 다공성을 얘기하는 대표적인 재료가 아닐까.

 

겹담으로 담을 쌓는 일도 자기과시가 들어가는 것 같다. 예전 방식의 홑담쌓기는 소통의 시작이다. 예전의 느낌이 있는 집은 아직도 있다. 그런 집을 가치가 있다고 보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될건가.

전통건축의 정의는 구조가 살아있는 집이다. 제주에도 그런 집이 많다. 그 가치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먼저 봤다. 돌창고도 그렇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개조하면서 층고를 올리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층고를 높인다면 옆에 새로 지으면 된다. 지맥건축 첫 사무실도 그런 공간이었다.

 

집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억을 없애려 한다.

없애려는 게 아니라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해서다. 시대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직원들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한다.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지 말고 앉아서 메모라도 하라고 한다. 오늘은 뭘할지 정리를 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바뀌더라.

개인적으로는 언제까지 설계를 마무리짓겠다고 건축주와 약속을 않는다. 며칠까지 마무리하겠다고 치약처럼 짜낼 수 없다. 불만인 건축주도 있지만, 건축가는 생각을 파는 사람이다. 돈으로 파는 게 아니다. 빨리 그려주면 좋지만, 생각을 오래 하니 조금씩 깊어진다.

 

분절하는 작업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건축주가 그냥 편안한 공간으로 그려달라고 한다면.

그런 분은 잘 오지 않더라. 끼리끼리 만나는가 보다. 설계에 2년 반이 걸린 다세대주택이 있다. 지금 짓고 있다. 설득을 해서 분절을 했다. 재료는 건축주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으나, 도시의 가치를 보는 일은 내게 맡겨달라고 했다. 가족들이 각각 사는 다세대주택인데, 누나가 사는 공간이 다르고, 동생이 사는 공간이 다 다르다. 주택 설계를 여러 개 하는 느낌이었다. 공동주택은 그래야 한다고 본다. 쓸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은 앞으로 그렇게 가면 좋겠다. 똑같은 평면이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의 특성에 맞춘다면 좋겠다.

임대를 많이 해봤는데, 섬세하게 설계를 해야 한다. 집없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가우건축에 있을 때 정말 평면은 잘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오랫동안 평면에 대한 생각을 한다.

결국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열심히 하면 된다. 그게 축적이 되어 나타나고, 쌓여간다.

 

건축주 입장에서 얘기해보겠다.(2004년 당시 나는 의뢰인이었다.) 2004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지금까지 변형한 게 없다. 그건 설계를 잘 했다는 건가?

지금도 그 집은 기억난다. 건축주의 성격을 잘 알아서 만들었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분절되고, 공간이 각각 다르다. 그래서 16년을 살았지만 늘 새로운 느낌이다.

부드러움? 편안함? 집은 편안하면 제일 좋지 않을까.

 

그게 행복이다. 행복의 건축이다.

건축가들이 추구해야 할 집은 어떻게 해야 편안함을 줄 수 있나에 있다. 편한 게 아니라 편안함과 안정감, 포근함이다. 편한 것은 편안함과는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이 편한 것만 추구한다.

 

편한 것만 추구하면서 지금 우리나라 주거는 아파트의 평면이 일반형태가 되어버렸다.

일본은 도시계획을 하면 단독 주거 형태를 많이 만든다. 우리처럼 3층 이상이 아니라 2층 이하이다. 2층이 갖는 스케일이 좋다.

제주도는 1·2층 건물이 있는데 곁에 10몇층이 들어서곤 한다. 뭔가가 깨지고 만다. 그럴 때 건축가는 고민을 해야 한다. 주변과 어울리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돈이 우선일까, 건축가 의지가 중요할까. 돈을 많이 주고 원하는 대로 해달라면.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그같은 상황이 온다면 못할 것 같다. 건축가들은 뭔가 제약이 있어야 의미 있는 작업을 하게 된다. 예산이 적다거나, 돈이 없다거나, 땅이 희한하게 생겼다거나, 주변환경이 좋지 않을 때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결국엔 땅을 봐야 한다. 땅을 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본다. 건축주와 그들 가족의 환경도 알아야 한다. 설계는 그 사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건축가가 사는 공간이 아니기에, 건축주를 이해해야 하고, 그래야 설계를 할 수 있다. 내 자신이 마음에 들 때까지라고 말하는 건 바로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이다. 계속 대화를 하고 바꿔달라면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면서 며칠 고민을 한다. 아니라면 설득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끌리는 공간이나 땅 이야기를 해줬으면 한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동문통에서 내가 태어난지 6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살기 힘들어지자 아버지 고향 성산읍 난산리로 갔다가 어머니 고향인 표선면 하천리로 가서 살았다. 하천리에 살던 초가는 기억에 있다. 올레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기억도 있다. 초가와 올레, 그때는 가치를 몰랐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 하천리는 천미천을 끼고 있는데 천미천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요번에 가봤는데 하천을 다 개발해 버렸더라. 정말 좋았는데, 결국은 인간이 문제이다.

 

제주도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가치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

자연이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접점이 있다. 땅과 바다가 만나는 접점, 하천과 땅이 만나는 경계. 그 경계가 해안도로와 제방을 쌓으며 무너지고, 생태계도 무너진다. 해안도로를 왜 바다에 바짝 붙여서 낼까. 좀 떨어지면 안되나.

 

서울은 박원순 시장이 있을 때 도로도 다이어트를 하더라.

제주도에도 공공건축가들이 있고, 도로 다이어트를 하려고 한다. 도심내 차량 속도를 줄이고 있다. 속도가 줄면 도로폭도 줄여야 한다.

 

인도에 가로수도 더 심어야 한다. 도로 한 가운데 사람이 건너지 못하게 차단봉을 연결해두고 있는데, 경관적 측면도 좋지 않다. 그건 바로 사람을 위한 도로가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50km로 낮췄으면 차단봉을 심지 말고, 빼내야 하는 것 아닌가.

사거리는 다 횡단보도면 좋겠다. 20초 동안 차량은 멈추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다니게 만들면 어떨까. 사람 위주의 도로여야 사고도 덜 난다. 그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사람 위주의 도로 행정과 도시 행정을 펴야 한다. 독일 학자가 제시한 브라에스 패러독스가 있다. 도로가 넓어진다고 차량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다.

주차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버스에서 보는 풍경이 예쁘다. 운전을 하면 보지 못하는 광경을 나는 본다. 서귀포를 오가게 되면 2시간을 잡아야 한다. 자동차는 빠르지만 밖을 보지 못한다. 이만큼 발전했으면 천천히 가면 안되는 건가.

 

- <나는 제주건축가다>라는 기획의 마지막 인터뷰이다. 이번 기획을 평가해준다면.

건축가에게 영향을 준 책에 대한 이야기, 땅에 대한 기억을 보니 너무 좋더라. 스무명의 건축 접근 방법을 보면서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됐다. 건축가 뿐아니라 예비건축가들도 보고 배웠으면 한다.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

 

마지막으로 건축가들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큰 역할은 아니라도 스스로가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이 모인다면 사회를 위한 역할을 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대중을 계몽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시민을 알아야 한다. 건축가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해야 한다. 시대도 이해하고,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고, 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바라보고, 전시회도 많이 해야 한다.

 

<음예공간예찬>,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책 제목 <음예공간예찬>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1996년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이 되었고, 다시는 그 이름으로 만나지 못하는 절판된 책이다. 이후에 원래 제목 그대로인 <음예예찬>의 또 다른 번역본이 시중에 나와 있다.

한자 ‘음예(陰翳)’는 낯선 단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쓰지 않는다. ‘음예’라고 불릴 공간이 일본보다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보다는 일본인이 ‘음예’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기에 그런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음예’는 어두움이면서 그 어둠 속에 밝은 뭔가를 만나는 느낌이다. 한줄기 빛을 담아둔, 그러니까 은은한 빛을 말한다.

<음예예찬>은 1933년 세상에 나왔다. 지은이는 건축과는 연관이 없는 작가일 뿐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음예공간예찬’에는 타니자끼 준이찌로라고 지은이를 소개하고 있다)의 작품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인기를 얻었다. 아무래도 서양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다니자키의 작품에 그려있기 때문이다.

‘음예’라는 단어를 곱씹으면 풍미나 난다. ‘풍미’를 사전적으로 풀어내면 ‘음식의 고상한 맛’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음예에서 풍미를 느낄 정도라면, 동양적 사고가 몸에 배거나 옛것의 기품에 빠질 줄은 알아야 한다. 풍미는 화려함과는 다르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맛이 단어에 있다. 우리나라 식기로 많이 쓰던 놋그릇, 즉 유기는 만들어냈을 때는 화려한 빛을 띠지만 사람들이 쓰고 또 쓰고 하면서 세월의 때가 묻는다. 그게 그 나름의 멋이다. 그런 세월의 풍미를 다니자키도 알고 있고, 일본 사회도 그랬다. 자주 쓰고, 오래 쓰는 식기에게 반짝임은 오히려 욕먹을 일이었나보다. 다니자키의 표현을 들여다볼까.

“서양인은 식기 따위에도 은이나 철강, 니켈제를 사용하여 반짝반짝 빛나도록 마구 윤을 내는데, 우리들은 그런 식으로 빛나는 것을 싫어한다. 오히려 표면의 광택을 없애고 시대에 따라 검게 구워지는 것을 좋아하여 소양이 없는 하녀가 모처럼 녹이 슨 은기를 윤이 나게 닦거나 하여 주인에게 꾸중듣는 일이 있는 것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나는 사건이다.”

다니자키는 억지로 반짝이게 만들지 않고, 시간의 흐름이 만드는 반짝임을 ‘음예’로 표현하곤 한다. 시대가 만드는 반짝임은 손때가 묻은 반짝임이다. 자주 쓰는 물건이 닳고 닳아서 반짝이는 경우도 있고, 나무로 된 계단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처럼 손때를 탄 광택은 은은한 빛을 낸다. 다니자키는 그런 손때에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일본의 옛 건축물은 띠로 이은 커다란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큰 지붕은 처마에 깊은 어두움을 드리운다. 그런 큰 지붕에 싸인 집은 대낮이라도 처마에서 만나는 건 깊은 어둠이다. 다니자키는 그런 일본의 지붕을 ‘우산’으로 표현했고, 그에 대비되는 서양의 지붕은 ‘모자’로 빗댔다. 일본의 옛집이 차양을 길게 내고, 차양으로 드리운 어둠을 필수요소로 여겼다. 이유를 따진다면 비바람을 막을 도구가 곧 지붕이었다. 일본사람들은 거기서 미를 찾았다고 한다. 그게 그늘이고, 다니자키가 말하는 ‘음예’였다. 다니자키는 그걸 ‘그윽함’이라고도 말했다. 다니자키가 책에서 말하는 미(美)는 명암에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미는 물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가 만들어내는 음예의 무늬, 명암에 있다고 생각한다. 야광 구슬도 어둠 속에 두면 광채를 발하지만 밝은 대낮에 드러내면 보석의 매력을 잃는 것처럼 음예의 작용을 벗어나서는 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니자키는 빛과 함께 소리도 ‘음예공간’에 담으려 했다. 우리가 ‘해우소’라고 부르는 절의 ‘변소’에 다니자키는 유독 애착을 표했다. 다니자키는 “교토나 나라의 사원에 가서 고풍스럽게 어둑어둑한 또한 깨끗이 청소된 변소로 안내될 때마다 일본 건축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낀다”고 적고 있다. 그는 어두운 변소에 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장지의 반사를 받으며 명상에 잠겼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 중의 불편’이 변소인데, 그는 그런 불편을 감소하더라도 변소의 또다른 매력인 어둑어둑한 곳에서 새어나오는 빛과 소리에 감응한 작가였다.

어쨌든 빛이 효과를 얻을 때는 어둠이 있어야 한다. 다니자키는 밥 한 사발에도 음예를 표현했다. 일본은 칠기그릇이 유명한데, 거기에 밥을 뜨면 흑과 백이 대비를 이룬다. 검은색의 밥그릇에 아주 하얀 밥이 얹히고, 따뜻한 김이 솟아오르면서 그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밥알을 보게 된다. 이렇듯 음예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우리 곁에 있고, 예전 우리 집엔 더더욱 음예로 가득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