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원하는 공간 만들어주는 건 가슴 떨리는 일”
“아이들에게 원하는 공간 만들어주는 건 가슴 떨리는 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6.03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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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공간] <6>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

2019년 학교공간 혁신사업을 하며 건축가와 ‘협업’
“사이공간은 서로에게 만남과 관계 형성하는 지점”
학교 구성원들에게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줘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도시에는 무한한 장소가 있고, 장소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다. 이처럼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장소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도시의 특성상 단독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 만일 단독으로 존재한다면 그건 특정 집단을 별로도 관리하는 ‘게토’나 다름없다. 특히 건축가들은 도시내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키려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공간과 공간의 맥락이 끊이지 않고 흘러가도록 구상하는 일은 건축가로서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이공간’의 탄생은 건축가들의 그런 활동에서 나왔다.

영어로 ‘인 비트윈(In-Beteen)’이라고 불리는 ‘사이공간’은 미디어제주의 <놀이와 공간>이라는 기획에서 많이 선보였다. 사이공간은 내부와 외부의 연결이고, 감정과 감정의 연결이며, 세대와 세대의 연결, 부분과 전체의 연결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기획에서 자주 강조한 ‘사이공간’이 건축가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건축가들이 사이공간의 의미를 찾아냈다면, 그 뜻을 좀 더 확장해 발전시켜나가는 이들은 바로 사용자들이다.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부설초등학교(이하 교대부설초)의 ‘사이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은 건축에서 말하는 ‘맥락’이며 공간과 공간의 흐름을 일깨운다.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 ⓒ미디어제주

교대부설초는 지난 2019년부터 학교공간 혁신사업에 뛰어들었다. 공간혁신이 이뤄진 배경은 다소 특이하다. 학년별 교육과정을 고민하면서 교육공간에 대한 협의가 시작됐다. 2017년부터 적용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참여수업을 통한 학습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것이었기에 교육과정 고민이 공간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였다. 교대부설초 고가연 교장의 설명은 의미 깊다.

“교육과정과 연계해서 학교공간은 어때야 하는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침 제주학교컨설팅연구회와도 이런 고민을 나누고, 설계할 건축가를 위촉하자는 의견이 도출되면서 탐라지예 권정우 소장이랑 함께하게 된 겁니다. 이게 다른 학교에도 퍼지게 됐어요.”

바뀐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의 도출, 건축가와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 교대부설초 사이공간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탄생했다. 교대부설초 공간혁신은 교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먼저 이뤄졌다. 학교도서관이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고, ‘사이공간’도 발견했다. 공간혁신이 교실이 아닌 곳에서 이뤄진 이유는 있다.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을 변화시킬 경우 교실을 바라보는 안목도 달라지리라는 생각에서다. 고가연 교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는 일상생활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입니다. 그 생활이 풍성해진다는 것, 학교생활 하나하나가 풍성해진다는 것은 아이들의 세계가 바뀐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려요. 학교공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아침부터 하교할 때까지. 어떤 학생들은 방과후 과정도 하게 되니, 고가연 교장의 말처럼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세계’나 다름없다. 때문에 그 세계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건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공간변화는 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 권정우 소장이 맡았다. 그는 아이들이 만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거대학교는 공간적으로 아이들이 만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사이공간에 더 애착이 갔다.

“학교에서 같은반 아이들이 아니면 얼굴을 알기 힘든 학교도 많아요. 관계에 대한 접점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교대부설초 사이공간은 서로를 만날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좋은 지점이죠. 그동안 우리는 이런 공간보다는 특수목적을 지닌 곳에만 신경을 많이 써왔던 겁니다. 처음엔 옥상에 관심을 뒀지만 여건이 되질 않았어요. 그래서 도서관이랑 같은 층에서 뭔가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사이공간’이 탄생했어요.”

교대부설초 사이공간은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멍 때리면서 밖을 내다볼 수도 있다. 서로 마주보면서 대화를 하거나 토론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쉼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광범위한 토론이 가능한 의사당의 냄새까지 풍긴다. 다소 아쉽다면 코로나19라는 시대물이다. 그래도 간간이 사이공간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다.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에서 만난 아이들. 왼쪽부터 문혁준, 고민서 학생, 사이공간을 설계한 탐라지예 권정우 소장.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에서 만난 아이들. 왼쪽부터 문혁준, 고민서 학생, 사이공간을 설계한 탐라지예 권정우 소장. ⓒ미디어제주

“앉아서 쉬기도 하고 누울 수도 있어요. 여기서 배움공책 작성도 하곤 해요. 사이공간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려요.”(5학년 고민서 학생)

“쉬고 싶을 때나 도서관이 꽉 찼을 때 사이공간을 찾아요. 여기서 학교 모습을 볼 수 있어 무척 좋아요.”(5학년 문준혁 학생)

사이공간은 나비효과를 불렀다. 2019년 당시 권정우 건축가랑 5학년 학생들과 진행된 건축수업은 5학년에게만 영향을 준 게 아니었다. 권정우 건축가랑 함께하지 못한 6학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서 학교 전체의 흐름이 바뀌었다. 6학년 학생들의 프로젝트 모둠 ‘공간 설계 전문가 : Please In My Back Yard’가 만들어졌고, 제1회 학교공간혁신 학생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성과도 올렸다. 학생만 바뀐 건 아니다. 학교 교육과정도 바뀌었다. ‘탐구하는 교실 설계 프로젝트’ 등 공간 이야기가 교대부설초 교육과정에 포함될 정도이다. 학교 구성원들에겐 공간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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