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부터 제주해녀까지 제주여성 오롯이
설문대할망부터 제주해녀까지 제주여성 오롯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10.20 05: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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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제주 읽기] <7> 초록주멩기

우리의 전통 옷과 서양 옷의 큰 차이를 들라면 ‘주머니’가 아닐까 싶다. 주머니가 달린 옷은 별도의 주머니를 챙길 필요가 없지만, 한복을 입던 우리는 옷에 달린 주머니가 아니라 별도로 차고 다니는 주머니를 필요로 했다. 설날은 더더욱 주머니를 요구했다. 설날 때 주머니는 새해맞이 선물로 곡식을 받는 용도였으나, 한복과 어우러진 주머니는 ‘복주머니’라는 이름을 달고 빳빳한 세뱃돈을 챙기는 도구로 쓰이곤 했다.

어쨌거나 한복이라는 특성상 별도의 주머니를 필요로 했는데, 그런 주머니는 과연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쓰였음을 사료로 확인할 수 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를 들여다보면 신라 혜공왕은 왕이 될 때까지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여덟 살 때 왕위에 오르니, 이가 혜공대왕이다. 어린 왕은 이미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돌날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언제나 여자들이 하는 장난을 하고,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하며 도교를 믿고 휩쓸려 다녔다.” <삼국유사 권 제2, 기이 제2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조(條)>

《삼국유사》를 보면 혜공왕은 돌 이후 8세까지 비단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는데 이후엔 주머니가 필요했을까, 아니면 필요 없었을까. 언뜻 주머니는 어린아이들의 노리개처럼 보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복에 적응된 우리는 서양 옷을 입기 전까지는 몸에 지니는 필수품의 하나로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조선왕조실록》만 하더라도 임금이 신하에게 주머니를 내리는 일이 허다했다. 신하가 왕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왕이 답례품 형식으로 주머니를 주기도 하고, 격려하기 위해 주머니를 하사하기도 했다.

“(임금이) 자줏빛 색깔의 주머니를 승정원에 내리고, 말했다. 전에 영돈녕 이상과 주서·사관에게 주었으나 여러 재상에게 아직 주지 못했다. 의정부와 육조, 한성부, 도총부, 사헌부, 사간원, 장례원의 당상에게 나주어 주게 하라고 했다.” <성종실록 186권, 성종 16년 12월 28일>

성종이 나눠주도록 한 주머니에 어떤 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종은 1485년(성종 16)년 12월 28일에 당상관, 즉 정3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주머니를 하사했다고 실록은 밝히고 있다.

몸에 차는 주머니는 ‘주머니 낭(囊)’으로 표현되는데, 이보다 큰 건 ‘주머니 대(袋)’라고 불렀다. 인조반정 때 광해군이 은을 잔뜩 숨겨둔 주머니가 발각되는데, 그 주머니는 ‘낭’이 아닌 ‘대’였다.

“대궐이 불로 타버렸다. 왕이 숨고 나서 군사들이 궁궐로 들어왔는데 궁중은 텅 비어 사람은 없고, 왕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때 횃불을 잘못 버려 궁전을 잇따라 태웠는데, 불을 끄게 했으나 인정전만 남고 모두 탔다. 그 후 잿더미 속에서 은 4만여냥을 획득했다. 왕이 가죽주머니에 은을 넣어 자신의 침전에 두었던 것이다.” <광해군일기 187권, 광해 15년 3월 12일>

지금의 기준으로 따지면 은 4만냥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가늠할 수는 없지만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돈임은 분명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군량 확보를 위해 조선에 줬던 은을 광해군이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광해군이 재산 축적에는 유달리 밝았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광해군은 자루에 가득 은을 보관하고 있었고, 《조선왕조실록》은 그 가죽주머니를 ‘피대(皮袋)’로 표현하고 있다.

광해군은 은을 모으기 위해 좀 더 큰 주머니를 필요로 했으나, 임금이 신하들에게 직접 하사하는 주머니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주머니 가운데는 향을 더하는 ‘향낭’이 많았다. 상대방에게 은은한 향을 전달해주던 향낭은 남녀를 불문하고 지니고 다녔단 필수품이었다.

만덕할망을 표현한 그림. 미디어제주
만덕할망을 표현한 그림. ⓒ미디어제주

그렇다면 섬에 살던 제주사람들은 어떤 주머니를 지니고 있었을까. 제주의 기본 복식은 한반도 여느 곳과 다르지 않기에, 제주사람들도 육지부와 비슷한 주머니를 차고 다니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주머니는 제주어로 ‘주멩기’라고 부르는데, 제주그림책연구회가 주머니를 모티브로 한 그림책 《초록주멩기》를 펴내기도 했다.

《초록주멩기》는 제주그림책연구회의 연작 시리즈의 하나이다. 제주그림책연구회는 제주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돌·바람·여자, 즉 ‘삼다’를 그림책으로 표현해냈다. 돌은 《구멍숭숭 검은 돌》이라는 그림책으로, 바람은 《오늘도 바람이 불어》, 여자는 《초록주멩기》로 환생했다.

《초록주멩기》는 이렇듯 제주여성을 잔뜩 표현한 그림책이다. 제주그림책연구회는 《초록주멩기》를 펴낸 이야기를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제주 길을 걸으면서 제주여성들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척박한 땅을 일궈온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 속에는 신화 속 여성들의 강인함이 깊숙이 스며 있습니다. 제주여성의 정신적 삶의 뿌리인 여신들, 그리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초록주멩기에 담아 보았습니다. 초록주멩기는 제주여성들의 생명력입니다.”

《초록주멩기》는 제주 탄생부터 시작한다. 제주 탄생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여신이 언뜻 떠오른다. 맞다, 바로 설문대할망이다. 설문대할망은 초록주머니를 쥐고 달린다. 어디까지 달릴까. 초록주머니를 쥔 손은 다음 주자에게 넘어간다. 설문대할망의 초록주머니를 받은 이는 영등할망이다. 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에 이어, 풍요와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이 초록주머니의 주인공이 된다. 초록주머니는 또 다른 주자를 기다린다. 누구일까? 이번엔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삼승할망이 초록주머니를 이어받았다.

《초록주멩기》는 설문대할망, 영등할망, 삼승할망에 이어, 백주또, 자청비, 조왕할망, 가믄장아기 등 신화속 인물들을 하나 둘 소환해냈다. 백주또는 마을신의 어머니가 된다. 자청비는 농경신이며, 조왕할망은 부엌살림을 맡은 신이다. 가믄장아기는 운명의 신으로 지혜로운 여신이다.

초록주머니에 담긴 내용. 미디어제주
초록주머니에 담긴 내용. ⓒ미디어제주

《초록주멩기》는 신화 속 인물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역사적인 인물도 등장시키고 있다. 신화를 뛰어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던 초록주머니는 드디어 만덕할망에게 전달된다. 만덕할망은 굶주렸던 제주사람들을 살려낸 역사적 인물 아니던가. 만덕할망의 기세는 제주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해녀에게 전달된다. 그렇게 전달된 초록주머니는 할머니를 거쳐 엄마로, 엄마의 손에서 고사리손인 ‘내’게 온다.

신화 속 인물, 역사적 인물을 거치고 거친 초록주머니엔 뭐가 담겼을까. 초록주머니는 제주여성이 뿌린 온갖 정신이 담겼다. 그 정신은 굳셈이기도 하며, 용기이기도 하다. 나눔일 수도 있고, 배려이기도 하다. 제주의 미래를 보장하는 맑은 공기일 수도 있고, 세상의 모든 걸 사랑하는 아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거치고 거쳐서 내게 온 초록주머니엔 과연 뭐를 담으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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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2022-10-20 12:17:07
신비로운 초록주머니 이야기를 재미나게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