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2:56 (금)
제주4.3 기억하는 다양한 방법 ... '달리기'로도 널리 전한다
제주4.3 기억하는 다양한 방법 ... '달리기'로도 널리 전한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4.07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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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유적지 달리기, 20~30대 젊은 층에게 4.3 알려
다른 지역 이들도 참여 "이전까지는 4.3 잘 몰라"
"4.3, 더욱 많은 이들에게서 기억돼야할 일"
제주도내 러닝크루인 '제주러닝크루(제주알씨·JEJURC)가 지난 3일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부터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까지 달리는 4.3러닝 캠페인을 벌였다. 이날 러닝에 참여한 이들이 곤을동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도내 러닝크루인 '제주러닝크루(제주알씨·JEJURC)가 지난 3일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부터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까지 달리는 4.3러닝 캠페인을 벌였다. 이날 러닝에 참여한 이들이 곤을동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변화의 시작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들 하나하나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변화가 모이고 모여 큰 물결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리지만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는 제주4.3을 보다 널리 알리고, 4.3을 몰랐던 이들의 마음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4.3단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및 추진한다. 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일도 진행 중이다. 언론 등도 이와 같은 내용을 적극 알리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4.3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

그와 동시에 제주의 20~30대의 젊은 층은 자신들만의 방식과 자신들만의 행동으로, 작지만 확실하게 4.3을 알린다. 그 중의 하나가 ‘달리기’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4.3을 알리고, 4.3의 아픔과 화해·상생의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제주도내 러닝크루인 ‘제주러닝크루(제주알씨·JEJURC)’가 도내 청년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4.3유적지를 달렸다.

제주알씨가 모인 것은 4.3 당일인 3일 오후 7시경이었다. 도내 청년과 다른 지역 청년 등 20여명이 모였다. 장소는 옛 주정공장터에 만들어진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앞이었다.

주정공장은 4.3시기 최대의 집단수용소였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무고하게 잡혀온 이들이 취조와 고문을 당했고,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자신의 죄명도 알지 못한 채 다른 지역의 형무소로 끌려갔다. 그렇게 끌려간 이들은 물론 이 주정공장에 수용됐던 많은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질 못했다.

이처럼 4.3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에 모인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4.3을 기억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의 경찰 발포로 민간인이 숨진 것에서 4.3이 시작됐는데, 그 당시 제주인구의 10분의1인 약 3만여명이 4.3 과정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4.3 희생자의 규모를 알고 있었던 이들은 희생자들의 숫자에 숙연해졌고, 다른 지역에서 와 4.3을 잘 모르고 있던 이들은 그 숫자에 놀랐다.

제주도내 러닝크루인 '제주러닝크루(제주알씨·JEJURC)가 지난 3일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부터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까지 달리는 4.3러닝 캠페인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 곤을동까지 이어지는 길을 달리고 있다.
제주도내 러닝크루인 '제주러닝크루(제주알씨·JEJURC)가 지난 3일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부터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까지 달리는 4.3러닝 캠페인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 곤을동까지 이어지는 길을 달리고 있다.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에서 출발한 제주알씨는 화북동의 잃어버린마을인 곤을동까지 달려갔다.

곤을동은 4.3 당시 불타 사라진 마을이었다. 4.3이 시작되고, 1948년 11월 제주 전역에 계엄령 선포와 함께 ‘초토화작전’이 시작되면서 4개월여에 걸쳐 제주의 수많은 마을이 불탔는데, 곤을동 역시 그 때 불타 사라졌다.

곤을동이 타오른 것은 1949년 1월이었다. 1월5일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마을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마을사람들 중 젊은이들은 해안가로 끌려가 총살당했고, 이들이 살던 곳은 이틀에 걸쳐 불타 사라졌다. 이렇게 사라진 집은 60여채에 달했다.

4.3역사관에서 곤을동까지 뛰어온 이들은, 집들이 사라지고 그 터만 남은 곳에서 70여년 전 마을의 모습을 그렸다. 그렇게 곤을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4.3 당시의 참혹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어 그 순간들을 버티고 지금까지 살아온 제주도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4.3달리기에 참석했던 이들 중 광주에서 살다 최근에 제주에 이주한 이영진(30)씨는 “사실 지금까지는 4.3에 대해서 간략하게 ‘그런 사건이 있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오늘 달리기에 함께하면서 유적지들 둘러보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서 4.3에 대해 어느 정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고, 제주 자체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저도 광주에서 살았다보니, 제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 세대는 5.18과 관련된 감정들이 서려 있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제주에도 4.3과 관련된 다양한 감정들이 제주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에 서려 있지 않을까, 제주만의 한이 서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오늘 달리기를 하면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포항에서 한달살기를 위해 제주를 찾은 하소라(34)씨는 이날 달리기에 참석하기 전까지 4.3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하씨는 “솔직히 일제 시대 일제의 횡포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이에 대해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4.3을 마주하고, 알게되면서 제주도민들에게 마음 속에서 아픔이 지속돼 왔다는 점을 느꼈고, 많이 공감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아직까지도 육지부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4.3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고, 이 4.3을 더욱 제대로 알릴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4.3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서 기억돼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제주알씨를 이끄는 이규호 크루장 역시 “제주에서 살게 된 이후 처음으로 4.3의 아픈 역사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4월3일마다 4.3러닝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며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제주를 더 깊이 알아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제주알씨는 이번같은 4.3러닝 캠페인만이 아니라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주기적으로 산지천 일대를 달리며 구도심에 활발함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동시에 해안가에서의 플로깅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이 크루장은 이에 대해 “다양한 달리기를 통해 건강함과 동시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키워나가고 싶다. 아울러 무관심으로 지나칠 수도 있는 곳들을 돌아보며 제주를 더욱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며 “달리기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재미있고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제주를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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