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기후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비건,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
기후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비건,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8.17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시 한림읍 비건카페 '앤드유' 유혜경 대표
"비건, 기후위기에 돌파구로 제시하고 싶어"
"더욱 많은 이들 동참할 때 변화 만들어 낼 것"
한림읍 옹포리의 비건 카페 '엔드유'의 유혜경 대표. 그녀는 비건을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림읍 옹포리의 비건 카페 '앤드유'의 유혜경 대표. 그녀는 비건을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힘들 것이라는 막막함이 드는 그런 순간 말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고, 오히려 상처를 입고 지쳐버릴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은,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맞이하게 된다.

막막한 벽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내려놓고 돌아설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을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로 비유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는 ‘벽’이라는 느끼는 무엇인가를 마주했을 때, 담쟁이는 말 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시인은 말한다.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두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천천히 다른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은 그 벽을 넘어선다고 전한다.

이 담쟁이처럼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을 넘기 위해 부단히 나아가는 한 여성을 제주에서 만났다. 한림에 터를 잡은 그는 한쪽에서는 수산업의 거대한 한 축이 돌아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축산업의 현장이 펼쳐지는 와중에 ‘비건’을 외치고 있었다. 그를 통해 ‘환경’과 ‘생명’을 말했다. 어떻게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산업의 한복판에서 그는 많은 이들의 손을 잡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한림읍 옹포리에서 비건 카페 ‘앤드유’를 이끌어가고 있는 유혜경 대표의 이야기다.

“제 기억속에서 저는 어릴 때부터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는 각종 일회용품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곤 했고, 그런 일회용품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에 버려지곤 했거든요. 플라스틱 병이 길에 굴러다니고, 봉지가 날아다니고, 어릴 때에 그런 것들이 눈에 많이 보였어요. 그런데 마침 학교에서도 그런 부분들에 대한 지적을 점차 많이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커지면서 성장을 해가고 있었는데, 또 어느 순간부터는 ‘기후변화’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죠.”

그가 뉴스에서 ‘기후변화’라는 말을 접하고 몇년 지나지 않아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라는 말로 대체됐다.

“이 ‘기후변화’라는 말을 접하기 시작했던 게 아마 고등학생 때쯤었어요. 그 때부터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대학을 디자인과로 진학했는데, 대학에서도 친환경 디자인이라던가 에코 디자인과 관련된 수업에 더욱 많은 관심을 두곤 했어요.”

디자인은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으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여겼고, 그 분야에서 많은 고민을 이어갔다. 각종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니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역시 업사이클링 디자인 업계 쪽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진 일부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다시 쓰레기로 버려지는 모습들이었다. 그는 “생산공정은 친환경이었지만, 다시 버려지는 물건들을 계속 생산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딜레마로 남게 됐어요”라며 그 때를 되돌아봤다. 그는 업사이클링에서 벗어나, 좀더 근본적으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비건카페 '엔드유'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터뷰.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비건카페 '앤드유'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터뷰.

그가 구제역에 대한 소식을 접한 것이 그때쯤이었다. 수많은 돼지들이 살처분되는 모습들이 연신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조류독감에 대한 뉴스들도 접하게 됐다. 닭들과 오리들 역시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규모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대규모 시설이 구축되고, 폐쇄된 공간에 수만마리의 가축들이 수용된다. 가축들 사이에서 병원균이 전파되기에는 안성맞춤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인간이 가축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진다고 수만마리의 가축들을 살처분하고 땅에 묻었다. 그는 이게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 지구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더 나은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고 싶었다. 그가 택한 방법이 ‘비건’이었다.

그가 비건을 접했던 것은 영국에서였다. 디자인 관련 업무를 내려놓고 찾아간 영국 중부의 한 마을에서 공동체 이뤄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 녹아들어 함께 지내며 비건을 공부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각종 비건 요리법도 영국에서 익혔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영국에서 지내다 비자가 만료되자 국내로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이 제주, 그 중에서도 한림이었다. 항만에서는 수많은 수산물이 거래되는데다, 제주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축산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에 비건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에게 이런 삶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이와 같은 대안적인 삶이 여기에서 이뤄지고 있고, 기후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시기에 조금이나마 돌파구가 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마음에 제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운명같은 것을 좀 믿는 편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동물들의 영혼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도 농담처럼 했었고요.”

그리고 2018년 4월5일 식목일에 그의 비건 카페가 문을 열었다. 그 후 그는 이 공간을 기점으로 다양한 환경보전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환경을 지키기 위한 비건 역시 전파하고 있다. 다양한 업체 및 단체와의 협업은 물론 최근에는 환경과 관련된 사회적기업도 준비 중이다.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비건카페 '엔드유'의 유혜경 대표가 제시하는 비건식 메뉴 중 하나.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비건카페 '앤드유'의 유혜경 대표가 제시하는 비건식 메뉴 중 하나.

그의 비건은 더 나은 삶의 질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한림읍에서는 축산업 시설에서 나오는 악취가 장기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다. 가축분뇨를 지하수와 연결되는 숨골에 장기간 무단으로 투기하다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숨골에 버려진 상당한 양의 가축분뇨가 지하수를 타고 해안가 용천수에서 솟아나기도 했다. 악취도 지하수를 따라 함께 솟아났다. 악취는 이렇게 축사 인근뿐만 아니라 해안까지 내려온다. 이 이후에도 가축분뇨의 무단방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는다.

그 역시 한림읍에 거주하면서 악취 문제로 힘들어하는 상황을 전했다. “지인들에게 물어봤을 때는 심할 때엔 곽지리에서부터 월령리까지도 악취가 난다고 들었어요. 비건의 실천을 통해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소망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게 다 잘 풀리진 않는다. 그도 벽을 만났다. 하지만 주저 앉진 않는다. 

“기후환경 문제에 이와 같은 사회문제에도 변화를 만들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데사실 요즘에는 답답한 부분도 있죠.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계속 나아가다보니 벽에 닿아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순간인 듯 싶기도 해요.”

그는 이와 같은 벽을 ‘연대’로 넘고 있다. 그만이 아니라 제주에서 ‘환경’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이 그와 이어지고 있다.

그의 공간은 환경을 지키려는 다른 이들에게도 열려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 역시 그의 공간을 통해 환경을 지켜려는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의 공간은 조금씩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나아가 다양한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며 그만의 ‘환경 네트워크’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는 벽을 만났지만 이 벽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넘고 있다.  담쟁이 잎 하나가 수 천 개의 다른 잎과 함께 벽을 넘 듯,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기후 위기를 넘어서 기후 붕괴 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말도 안되게 덥고, 예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태풍과 호우에 우리나라의 기후가 달라지고 있고, 바다도 사막화가 되고 있어요. 물은 물론 공기도 오염되고 있고요. 우리 모두가 이런 것에 보다 신경을 쓸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가 모두 조금씩 더 의식적으로 행동한다면 더욱 많은 이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