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송미아의 독서칼럼] <17>
[송미아의 독서칼럼] <17>
  • 김형훈
  • 승인 2023.11.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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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바람을 이뤄낸 조엄의 애민 정신, 『고구마 꽃』 ①

 

<목 차>

1. 『고구마 꽃』의 서사적 구조

2. 주인공의 성장배경과 세계관
가) 주인공 엄이의 성장 배경
나) 하늘이 맺어준 인연
다) 목숨을 불사한 리더의 신념

3. 고구마 꽃을 피운 애민정신
가) 애민정신에서 만난 고구마
나) 신의로서 얻은 고구마 종자
다) 고구마를 지켜준 우정의 힘

4. 서사에 겸비된 서정적 문학성
가) 시대의 아픔과 염원을 담은 노래
나) 절박함을 담아낸 삽화

조경희, '고구마 꽃'의 표지

들어가며

꽃은 아픔·절박함·성취의 도식을 끌어낸다. 자기 생명을 피워내기 위해 절박한 몸부림을 치고 나서야 꽃을 피워내듯, 성취하고자 하는 절실함에서 인간은 결코 소홀함이 없다. 개인의 아픔을 승화시키고, 타인의 아픔을 수용하며 실천하는 인물은 절박한 시대적 아픔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인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때론 아픈 역사로 인해 한 인물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러한 인물들이 모여 역사의 꽃을 피워낸다.

고려시대 때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들여와 백성들을 추위에서 구했듯이, 조선시대 때 조엄은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하고자 고구마 종자를 조선으로 가져왔다. 이들의 애민 정신은 백성들의 의생활과 주생활에 큰 변화의 꽃을 피워냈으므로 새로운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혁명적 영향력을 끼쳤음에도 문익점 선생의 목화씨 전파 유례에 비해, 조엄의 고구마 전파 유래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이때, ‘우리 선조들은 고구마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라는 조경희 작가의 관심에서 등장한 작품이 역사 동화 『고구마 꽃』이다.

조경희 작가는 전남일보 신춘문예 『별 밭이 된 씨름장』 당선, 계명 문화상과 눈높이 아동문학상 등 수상, 『천년의 사랑 직지』 외 다수의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고구마 꽃』은 역사 속 인물 ‘조엄’의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고구마를 조선 땅으로 가져와 퍼뜨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역사에서 소외된 조선시대 인물 ‘조엄’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의 애민 정신을 세상 밖으로 알리는 일에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서사적 성향의 작가정신을 감지할 수 있다.

아울러 작품 곳곳에 삽입된 노랫가락, 시적인 유려한 문체, 독자를 머무르게 하는 수묵화 등 서정적 문학성을 겸비하여 ‘천 개의 바람’을 ‘고구마 꽃’으로 승화시켜 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1. 『고구마 꽃』의 서사적 구조

“이 동화는 영조 임금 때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고구마를 조선 땅으로 가져와 퍼뜨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동화의 주인공 조엄과 친구 최홍경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동화에 나오는 사건은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 『고구마 꽃』의 주석

위 내용은 책 첫 페이지에 작가가 달아놓은 주석이다. 작품의 배경, 분량, 등장인물, 사건 등으로 볼 때, 『고구마 꽃』은 팩션이라고 볼 수 있는 “역사 동화”다. 팩션( Faction)은 사실을 의미하는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만든 역사 동화, 청소년 역사 소설, 역사 드라마 등 사실에 근거해 재구성, 재창조하는 작품들이 이에 속한다.

『고구마 꽃』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조엄’과 ‘최홍경’의 실존 인물과 고구마 종자 유래 내용이 실린 <해사일기>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팩션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작품의 등장인물이 소년기에 머무르지 않고 청년기, 성인기의 일대기를 다룬 점, 고구마를 전파하는 과정 등 역사적 팩트를 바탕으로 한 개연성이 짙은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고구마 꽃』은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는 동화다. 노인이 된 주인공 조엄의 외부 이야기와, 조엄과 친구 최홍경의 성장 배경 및 고구마 전파 과정의 내부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내부 이야기를 보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등 동화의 보편적 서사 구조와는 달리 인물의 삶을 일대기로 이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작가는 조엄의 인간애와 품성, 주체적 신념 등 성장 과정을 통하여 애민 정신을 전달하는데 훨씬 유효하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아울러 이야기 중간마다 한국 전통의 노랫가락과 수묵화를 삽입하여 독자의 감정이입을 북돋운다.

'고구마 꽃' 21쪽. 흩날린 그림
'고구마 꽃' 21쪽. 흩날린 그림

외부이야기(도입부) 뽀얀 안개 속에 고구마잎들이 힘차게 넝쿨을 키우고 있는 장면을 보는 노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든다. 노인이 고구마밭으로 들어가자, 고구마잎들 사이에 천 개의 바람이 일더니 그 속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노인은 그 아이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정신을 잃는다. 그때 고구마 같은 단단한 아이가 서서 내부 이야기로 연결된다.

내부 이야기 주인공 조엄의 일대기를 전개하며 인물들의 나이 등 뚜렷한 시기 구분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행동과 언어 묘사력, 시대 배경 등을 고려했을 때, 소년기 청년기 성년기 등 시기마다 특징적인 역사적 배경과 덕목을 만날 수 있다. 소년기에서는 친구 최홍경을 만나 인연을 맺는 과정까지, 청년기에서는 두 인물이 과거시험을 치르는 과정까지, 성년기는 계미년에 쇼균의 취임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사신행차로 갔던 ‘계미사행’ 이후이다.
특히 성년기 고구마 전파 과정에서는 숨은 과거가 재조명되는 시기로 전체 구성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결국 조엄과 최홍경은 애민 정신과 우정의 힘으로 고구마 꽃을 피워낸다. 내부 이야기는 이어지는 단락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외부 이야기(마무리) 동네 쪽에서 왁자하게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일며 고구마밭에 일던 바람이 잠잠해지고, 아이의 몸속으로 휘감겼던 노인이 정신 차리고 주위를 돌아본다. 아이는 사라지고 노인이 최홍경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른다. 그때 다시 태어나는 최홍경의 숨결을 느끼며 마무리된다. 결국 외부와 내부 이야기를 연결하는 매개체는 ‘천 개의 바람’이며, 그 바람은 백 년에 한 번 길조를 알리는 고구마 꽃으로 피어난다.
 

2. 주인공의 성장 배경과 세계관

가) 주인공 조엄의 성장 배경

'고구마 꽃' 21쪽. 흩날린 그림
'고구마 꽃' 21쪽. 흩날린 그림

이 동화의 도입부는 당시 조선시대의 당파 싸움으로 인한 세력 다툼에서 노론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글공부에 뛰어난 주인공 조엄은 노론 집안의 자식이었고, 반면 당파 세력에서 밀려난 소론 집안의 자식 최홍경이 두세 살 위인 덩치 큰 인물로 묘사된다. 최홍경은 서당 친구들 책가방까지 모두 조엄에게 들게 하는 등 노론 집안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조엄을 괴롭히는 인물로 등장한다.

“하늘에서 꽃비가 아니라 쌀비가 내리면 좋겠구나. 그러면 백성들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거늘...... 백성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보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겠구나. 관리된 자로 조선을 배부른 나라로 일구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도 부끄럽구나.” 아버지가 더운 한숨을 토해냈다. (P 32)

조엄의 아버지 이조판서의 대사다. 당시 이조판서는 이조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의 관직이다. 그는 여느 노론 파 벼슬아치들과는 달리 노론도 소론도 아닌 밤낮 굶주리는 백성을 생각하는 관리였다. 밤손님들의 땅문서나 집문서와 돈 꾸러미를 들고 와도 고스란히 돌려보냈으며 자식을 양반 자식들이 다니는 서원에 보내지 않았다.

위 발췌 문장을 보면 ‘하늘에서 꽃비가 아니라 쌀비가 내려 백성들이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조엄은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하고자 하는 애민 의지와 당파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강직한 아버지를 보며 자란다.

나) 하늘이 맺어준 인연

조엄의 아버지가 입궐했다 돌아오는 길에 최홍경을 데리고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게 했는데, 조엄과 최홍경은 까무러치듯 서로의 존재에 놀란다. 사연인즉 위기 상황에 놓여 있던 최홍경을 보고 퇴궐하던 아버지가 구해줬다고 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감싸안은 아버지 덕분에 조엄과 최홍경은 예사롭지 않는 인연의 싹이 튼다.

한편, 조엄은 서당 가는 길에 들러봤던 최홍경의 집에서, 방 문고리에 새끼줄이 묶여있는 홍경의 동생 ‘작은 아이’를 발견한다. 그 뒤 조엄은 자기 몫의 쌀을 덜어 최홍경 집에 가져가는 등 아픔을 함께 나눈다. 그러나 굶주림을 감당할 수 없는 최홍경은 동생을 살리고 봐야겠다는 심정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부잣집 대문 앞에 동생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이때 조엄은 최홍경과 피눈물 나는 순간들을 함께 했으며, 이후 홍경의 동생 작은 아이는 ‘굶주린 백성’을 상징하듯 조엄의 뒤를 따라다녔다.

“네 아비가 누구더냐?” 아버지가 물었다. “서얼이 어찌 아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생략) 홍경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생략) “아비는 4년 전 역적으로 몰려 강화도로 귀양을 가셨는데, 저 역시 숨어 지내는 처지라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4년 전 강화도라…. 내 이름이 최홍경이라고 하였더냐?” 홍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홍경이 두 손을 덥석 잡았다. (P84)

최홍경은 용기를 내어 조엄의 아버지를 찾아와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 과정에서 최홍경은 조엄의 아버지가 그토록 찾던 친구 자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노론과 소론이 알력 다툼을 하는 사이 죄 없는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소론인 최홍경 아버지도 그 중 한 사람의 죄인으로 희생되었다.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자신의 당파가 아니면 무조건 배척했던 역사 뒤안길에서 수많은 백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던 시대 배경이다. 최홍경은 소론, 조엄은 노론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당파를 초월한 형제애를 언약하며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맺는다.

다) 목숨을 불사한 리더의 신념

동생과 이별 이후 더 절박해진 최홍경은 ‘역관’이 되고자 무섭도록 공부했다. 조엄 역시 작은 아이의 눈빛을 간직하며 남들이 가지 않는 ‘삼사’를 선택, 둘은 어렵게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며 어른으로 성장해 갔다. 이후 일본의 새로운 쇼군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 행렬에 조엄과 최홍경이 함께 길을 나선다.

“정사님께서 입고 계신 저고리를 벗어 바다에 던져야만 노한 바다의 신을 달랠 수가 있습니다.” (P117)

배가 바다 한 가운데에 이를 무렵부터 폭풍우가 치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가득 찬 선원들이 조엄 앞에 엎드려 간청했다. 배에 탄 사람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입고 있는 저고리를 바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엄은 미동도 안 했다. “귀신은 결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소!”라며 엄포를 놓았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노려보며 엄은 자신이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조엄은 바다의 신과 맞서 싸우며 생각했다.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기는 방법은 마음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정신을 모으고 마음을 모았다. 이처럼 조엄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저고리가 아닌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각오였다.

'고구마 꽃' 119쪽. 흩날린 그림
'고구마 꽃' 119쪽. 흩날린 그림

엄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다를 주시했다. 한 줄기의 파도도 놓치지 않고 마음속 칼을 휘둘렀다. 온 정신을 모아 쉼 없이 마음의 칼을 휘둘렀다. 배에 탄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바다의 신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길흉은 오직 사람 하기에 달린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엄은 마음을 다잡았다. 눈을 감았다. (P120)

‘특립독행’은 세속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믿는 바를 행한다는 뜻이다. 신념은 이처럼 자신이 믿는 바를 주체적으로 표출하는 굳센 의지다. 결국 주인공 조엄은 바다의 신을 이겨냈다. 그는 바다의 신과 싸워 이기려면 자신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자신의 신념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행위는 그가 리더로서 보여주는 이끎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성장 배경과 세계관을 제시하며 휴머니즘의 면모를 곳곳에 설정한다. 당파를 초월한 우정, 자기 밥을 덜어 이웃에 나누는 이타심, 폭풍우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리더의 주체적 신념 등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아울러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보여준 덕목들은 이 동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고구마 꽃’의 뿌리가 된다. 이어지는 다음 달 연재에서는 애민 정신이 피워낸 고구마 꽃과 서사에 겸비된 서정적 문학성 등을 분석하여 작품의 가치를 내재화하고자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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