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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이 집은 100년의 기억을 가지며 산다
낮은 이 집은 100년의 기억을 가지며 산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2.08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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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건축자산을 찾아서] <1> 화순리 까망초가집

사람은 집을 닮고, 집은 사람을 닮는다. 수많은 건축물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지켰으면 하는 건축물이 사라지는 현장을 많이 봐왔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세월의 변화를 무시하지 못해서다. 그럼에도 건축을 자산으로 바라보며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런 공간을 찾아 나선다. [편집자주]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까망초가집. 미디어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까망초가집.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순한 사람들이 산다. 그 사람들의 집도 순하다. 사람과 집이 어쩌면 그리도 닮았을까. 집이 사람을 닮은 이유는 있다. 손길이 있어서다. 얼마만큼의 손길을 줬을까? 수만 시간의 손때가 타고, 연속된 시간의 겹침이 집에 있다. 오랜 집일 때라야 그게 가능하다.

겹침은 누적이다. 옛집엔 할아버지가 있었고, 할머니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도 거기 있었다. 그들은 모두 떠나고 없는 자리에,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부모 세대를 기억하는 이들이다. 그들도 이제 부모 세대의 나이를 뛰어넘어 손자를 둔, 성성한 머리칼을 안고 산다. 얼굴에도 하나둘 세월의 수평선이 자리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까망초가집. 새(표준어로 띠)가 아닌, 까만 그물망을 얹었기에 까망초가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집을 순한 부부가 지킨다. 순하디순한 그들. 화순은 그들의 고향인데, 왜 이 땅을 화순(和順)이라 부르는지 알겠다.

은퇴하고 집을 가꾸는 순한 부부의 까망초가집은 세 칸이다.

세 칸. 요즘의 아파트 평수 개념으로는 너무 작은 집이다. 넓디넓은 평수만 원하는 요즘 시대엔, 세 칸은 너무 평범해 보인다. 그렇지만 까망초가집에 사는 부부에겐 더없이 딱 맞다.

세 칸의 초가는 낮다. 산방산에 구름이 걸릴 때면, 구름도 잠시 머물며 까망초가집을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까망초가집은 남자 주인의 호를 빌려서 한운재(閑雲齋)라고 부르기도 한다. 흰 구름이 잠시 쉬어 가는 곳, 거기에 별빛처럼 반짝이는 머리칼의 주인이 있으니, 별과 구름이 다르지 않다. 옛사람들이 하얀 머리칼에 ‘성성(星星)’이라는 별을 붙인 이유도 짐작 간다.

화순리의 몽돌이 이 집에 보인다. 미디어제주
화순리의 몽돌이 이 집에 보인다. ⓒ미디어제주

순한 화순리 바닷가는 몽글몽글한 몽돌이 많았다. 개발로 그 많던 몽돌해변은 사라졌으나, 까망초가집 여기저기에 바닷가의 흔적을 느끼게 만드는 몽돌이 보인다. 몽돌은 모나지 않고 참 순하다. 사람과 집이 닮고, 집 마당도 순한 사람을 닮았다.

까망초가집은 옛사람들이 살던 제주초가다.

제주초가는 마루를 기준으로 기능이 나눠진다. 제주 사람들은 초가의 마루를 ‘대청’이라 부르지 않고 ‘상방’이라고 불렀다. 상방은 한자어를 빌린 단어다. 곧 ‘마루방’이라는 뜻이다. 마루가 방이 될 수 있을까? 제주 사람들은 마루를 방으로도 활용하는 지혜를 지녔다. 마루 앞뒤로 덧문을 다는데, 덧문을 닫으면 마루는 곧 방의 기능을 하게 된다. 그래서 상방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어쨌건 제주초가는 상방(마루)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공간이 있다. 한쪽은 구들(방)과 고팡이 자리하고, 다른 쪽은 정지(부엌)와 구들이 웅크린 모양새다. 그렇다고 집 구조가 판에 박듯, 같은 모양을 하지 않는다. 집 구조가 똑같다면 아파트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집이란 사람을 닮고, 사람이 집을 만든다.

집은 방에서 시작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있다. 너무 단순해 보이지만 방이라는 공간이 없다면 집이 만들어질 수 없다. 방은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고, 사람이 오갈 문을 달면 만들어진다. 단순한 논리이지만 그 같은 공간이 초가를 이룬다.

까망초가집은 세 칸이었다가 부엌 쪽을 조금 확장했다. 신혼부부를 위한 어머니 세대의 고민이었으리라. 그렇게 신혼부부를 위해 집을 내준 어머니는 먼저 가셨다. 부부는 어머니의 기억이 담긴 그 공간을 다시 찾았다. 허물어져 가던 초가를 뭉개지 않고, 편리한 기능만 몇 개를 담아 산다.

초가를 비롯한 우리의 옛집은 집 밖에 화장실을 뒀다. 정지와 변소를 마주하지 못하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제주신화 가운데 ‘문전본풀이’에 그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바뀐 시대에까지 변소를 멀리 둘 일은 없다. 부부는 2012년 초가를 살리면서 화장실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난방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예전 난방은 굴묵(굴목이라고도 함)이라는 공간을 통해 불을 지피고, 방을 데웠다. 납작한 구들돌이 열을 받으면 오랜 기간 따뜻함을 유지한다. 옛 방식대로 불을 지키는 일은 지금에 와서는 불가능해졌다. 나무를 가져다가 불을 땔 수 없다. 화력이 좋은 말똥을 구하지도 못한다. 시대가 변하면 삶의 방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까망초가집은 신식 보일러를 깔았다. 예전 바닥난방을 담당했던 구들돌은 집 마당의 디자인적 요소로 탈바꿈했다.

예전 썼던 구들돌은 이집의 디자인적 요소가 된다. 미디어제주
예전 썼던 구들돌은 이집의 디자인적 요소가 된다. ⓒ미디어제주
흙으로 채운 지붕에 한지를 덧대어 멋을 냈다. 미디어제주
흙으로 채운 지붕에 한지를 덧대어 멋을 냈다. ⓒ미디어제주

집이라는 구조는 기둥과 함께 벽이 중요한 요소였다. 옛집의 벽은 대나무와 흙으로 채운다. 지붕에도 흙을 썼다. 까망초가집의 원래 모습도 그랬다. 집주인은 어머니가 쓰던 집을 새로 단장하려는데 흙을 채운 벽이 보였고, 흙이 가득한 지붕도 드러났다. 집주인은 그걸 살렸다. 흙 위에 한지를 덧댔다. 한지를 몇 차례 더했더니 마치 회벽의 느낌이다. 회벽은 시간이 흐르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데, 한지는 그러지 않으니 좋다.

까망초가집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가옥대장에 1934년이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 까망초가집을 지키는 주인장의 아버지가 1934년 집주인으로 올라 있었다. 집주인의 아버지는 1922년생인데, 10대에 재산을 물려받은 셈이다. 재산분할을 하면서 현재 집주인의 아버지에게 넘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까망초가집은 1920년대에 세상에 태어난 게 분명하다. 한 세대를 산 집이다. 한지 너머에 있는 흙도 100년 전에 누군가의 손길로 채워졌으리라.

나이를 먹으면 기억이 흐려지지만, 집은 그러지 않는다. 집이라는 존재는 기억을 안고, 기억을 계속 채우며 산다. 집을 만들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이 있고, 10대에 재산을 물려받은 아버지의 기억이 있고, 지금 살고 있는 부부의 기억이 온전히 보존된다. 귀찮다며, 허물고 새집을 지었더라면 기억은 사라질 터인데, 까망초가집으로 살렸기에 기억을 가지며 산다.

까망초가집은 기억의 집이다. 처마에 집주인이 구독한 잡지를 덧댔다. 미디어제주
까망초가집은 기억의 집이다. 처마에 집주인이 구독한 잡지를 덧댔다. ⓒ미디어제주

까망초가집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산 초가도 집 주변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이젠 까망초가집이 가장 오랜 기억을 지닌 집이다. 집을 새로 단장하려다 보니, 기억이 집안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집주인이 젊은 시절 구독하던 잡지가 한가득 나왔고, 그 잡지는 처마의 아랫면을 장식했다. 방앳돌의 네모난 구멍에도 기억이 있다. 구슬 하나가 기억의 존재이다. 부부의 아이들이 구슬을 지니며 놀았는데, 구슬은 놀던 흔적을 말한다. 까망초가집은 뭐니 뭐니해도 기억의 집이다. 까망초가집처럼 오랜 집은 기억을 먹고 살고, 기억을 공유한다. 이젠 새로운 기억이 쌓일 준비를 한다. 까망초가집에 안길 새로운 기억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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