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재심 대상 확대 등 현안 집중해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많은 사람들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말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제주 7대 공약 중 하나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제주4.3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재판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는 산더미다.
연좌제를 피해 호적을 바꾼 뒤, 이를 되돌리지 못해 ‘제주4.3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제주4.3 때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도 생사를 알기 어려운 희생자들. 직권재심 대상에서 제외된 일반재판 피해자들. 가족을 잃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산 유족들까지… 아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안들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제주4.3 앞에서 ‘완전한 해결’이라는 말은 아직 이른 듯하다. 어쩌면 '완전한 해결'은 이룰 수 없는, 이뤄져서도 안 되는 해결방식일 지도 모른다. 제주4.3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은 영원히 제주4.3을 기억하고, 계속해 풀어야 한다.
“오늘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저희 (유족) 입장에서는 오늘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살아있는 자의 입장에서는 가족이 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지내고 싶고, 시신이 어디 있는 지 알고 싶고. 해야 할 일이 더 남아있는데, 과연 오늘 하루(무죄 판결)로써 끝날 것인가. (피해자와 유족 등) 이 분들의 한을 오늘 무죄 판결 하나로 과연 풀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제주4.3 수형인 양영배 씨의 유족 양영환 씨.
제주4.3 당시 형(양영배)을 잃은 유족 양영환(65) 씨가 말했다.
2022년 5월 17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제주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내란죄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근진, 양영배 씨 등 20명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심 대상자인 피고인 20명은 모두 고인이 된 상황. 제주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형을 선고받은 기록은 있으나 언제, 어디서 명을 달리 했는 지는 알기 어려운 이들도 존재한다. 양 씨의 형, 피고인 양영배 씨가 그렇다.
양 씨 말에 따르면, 그의 형은 18살 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누군가에게 끌려가 그대로 행방불명이 됐다. 그는 형의 죄명을 오늘(17일) 재심 재판장에 와서야 알았단다. 형의 죄명은 ‘내란죄’였다.
“18살에 내란죄를 범할 수 있을까요. (나의 형은) 당시 경찰과 군인들이 (체포) 건수를 올리기 위한 희생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 시대에 제주도민들이 과연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를 얼마나 알고 (내란을) 했는지. 되짚어볼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족 양영환 씨.
제주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유죄 선고를 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절차가 계속되고 있다. 이날(17일) 선고 또한 관련된 절차로, 검찰의 직권재심 청구로 성사된 재심 재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권재심 사례가 축적될수록, 풀어야 할 과제가 더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가장 시급한 과제들 중 하나는 단연 ‘제주4.3특별법 개정’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군사재판(군법회의)으로 인해 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만이 직권재심 대상이 된다. 이에 일반재판으로 인한 피해자까지 모두 직권재심 청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 모두 ‘죄 없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라는 면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지고 이들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 밖에도 앞서 밝혔듯 제주4.3 당시 ‘빨갱이 가족’으로 불리지 않기 위해, 혹은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호적을 달리한 사람들의 호적 정리가 필요하다. 이들을 ‘제주4.3 희생자의 유족’으로 인정하고, 합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
제주4.3 피해자 혹은 유족 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의 명칭을 ‘배상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상’이란, ‘적법한 행위’로부터 발생한 손실을 갚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배상’은 위법 내지 불법행위로부터 발생하는 책임을 뜻한다.
제주4.3은 명백히 불법행위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일종의 ‘제노사이드(Genicide)’ 사건이다. 그렇기에 제주4.3 피해자 및 유족에게 지급되는 피해 보상금은 ‘배상금’으로 불려야 옳다.
한편, 17일 공판 자리에서 재판부는 “오늘 무죄판결이 끝이 아니”라며 “제주4.3 사건은 지난 과거가 아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도 했다.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은 후대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장찬수 재판장은 “우리 모두의 책임(역할)이 크다”면서 재판장 방청석에 앉은 기자, 제주4.3연구소 관계자 등에게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제주4.3에 있어 '완전한 해결'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유족에게 배상금이 지급된다 하더라도 이들의 잃어버린 70여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라진 생명의 무게는 감히 그 어떤 배상으로도 갚을 수 없다.
제주4.3을 바라보는 새 정부의 시선. '완전한 해결' 너머에 '영원한 과제'가 있음을 인식한 모습이 되길 바라본다.